막걸리 한 잔

by Anima

어제는 관악산공원에서 무너미고개를 넘어갔다.

서울대수목원을 지나면 안양예술공원이 나온다.

흙길이 이어지다가 잔돌들이 깔린 경사로를 올라가긴 하지만 관악산 중에 평탄한 길이라 일주일에 한 번은 가고 있다.

이 관악산길은 어렵지 않은 길임에도

관악이라는 이름과 무너미고개를 넘어야 하는 중압감에 자주 오는 길벗들도 같이 걷기를 꺼린다.

주말에는 가벼운 산길을 선호하는 길벗들이 오긴 하지만 주중에는 더 한가한 산행이 된다.


어제는 남자 두 명이 참가해서 셋이 걸었다.

한 명은 술을 밥보다 좋아하는 주사랑이고,

또 하나는 단단한 체격에 주로 산행을 즐기는

길잡이 짱돌이다.


주사랑은 그동안 6개월 하다 중단, 3개월, 2개월 하다 중단한 상습적 금주미수자였지만 이제는 도저히 술이 없으면 심심해서 못 살겠다고

못 먹을 바에는 목을 매달겠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럼에도 건강 진단을 받으면 아직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그러다 훅 간다고 하는 친구들의 걱정에 조금 신경을 쓰는 정도다.

먼저 먹고 걷기 때문에 뒤풀이 없는 깔끔한 안녕을 고하는 내 길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사랑과 함께 하는 날은 늦은 점심과 함께 반주를 곁들이는 날이다.

가지가지 술을 섭렵하는 주사랑은 술이 달기만 하면 얼마든지 먹겠다는 내 말에 막걸리를 시킨다.

그래봤자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작은 한 잔에 그친다.


짱돌도 과거에는 두주불사였지만 몸 생각을 해서

이제는 많이 줄였다고 한다.

그 시점은 술을 즐기던 친구 몇 명이 세상을 등진 후부터......

그래도 남자들이라 서로 통하는 술기운을 느껴 막걸리 두 병을 나눠 마셨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는 막걸리의 달콤한 아스파탐 맛에 얼굴이 슬슬 화끈거리는 시점이 한 잔이다.

발효식품이니, 술 중에 건강식품이니 해도

술은 술이라 더는 마시고 싶지 않다.

길잡이 짱돌의 길에서는 저녁 뒤풀이가 꼭 있다는 말을 들은 주사랑은 눈을 반짝이며 그 길에 꼭 가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막걸리 병을 비웠다.


관악산공원에서 안양예술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어찌 보면 주사랑 맞춤 길이다.

처음 나왔을 때 구척장신 곰돌이 형상에 어울리지 않게 곱상한 걸음으로 뒤에서 묵묵히 따라왔다.

식당에서도 덩치 큰 자신이 민폐라고

독상을 즐기기도 했다.

두어 번 얼굴을 익힌 후부터는

나는 알콜중독자다, 술이 없는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까, 내성적인 사람이라

술이 들어가야 말을 한다고 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이 거듭 되니 술 없이도 말을 잘한다.

술만 나오면 세상 편한 얼굴에 약간 혀 짧은 말투로

얘기하는 모습이 동생처럼 심히 귀엽다.

실제로도 둘째 남동생 나이와 같다.

자기가 먼저 참가 댓글을 달아 다른 사람들이

싫어서 댓글을 안다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한다.

평지를 좋아하고 험한 길을 꺼리는 길벗들이라

관악산 무너미고개를 넘지 않는 것이라

'절대 주사랑의 탓이 아니니 괘념치 말라!' 했다.

'그렇지요? 그러면 제가 먼저 달아도 되지요?'

하면서 다시 눈을 크게 뜬다.

오랜만에 나온 짱돌의 안내로 더 쉬운 길로 내려와

하루를 개운하게 마무리해서 좋은지,

주사랑 맞춤길에서 막걸리 한 잔에 곁들인

이런저런 이야기가 좋았는지,

두루두루 기분이 좋아 잠도 잘 잤으니

오늘은 명동에서 길벗들과 반갑게 만나야겠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