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 윤아의 아빠인 이 진상은 내가 재혼한 사실을 모른다.
얼마 전에 윤아에게 주민등록 등본을 떼어 오라고 했는데 들어주지 않은 이유도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서다.
가끔 그쪽에서 윤아가 보고 싶다고 하면 데려다주곤 했다.
마음은 윤아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먼저 가출을 일삼았다고 위자료는커녕
양육비도 안 주는 거지꼴 이 진상은 그렇다 쳐도 그 조부모라는 사람들은 돈이 많아도 윤아에게 용돈 한 번 쥐어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머니라는 사람이 윤아 앞에서 내 욕을 하면서 눈물, 콧물 다 짜낸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더 보내기가 싫었다.
친권은 내가 가졌지만 그쪽에 면접교섭권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보냈다.
그나마 내가 소개해 줘서 결혼까지 한 이 진상 남동생의 아들 딸과 윤아가 사이가 좋아 다행이다.
윤아도 그 집에 가기만 하면 할머니가 울면서 엄마 때문에 이혼했다는 말을 해서 가끔은 가기 싫다고 했다. 윤아에게 못 할 짓을 한 부모 때문에 사춘기에 마음고생을 하게 했다.
어느 날 윤아가 사촌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동생 주성이 귀엽다고 말해서 내가 재혼한 사실을 알아 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왜 그랬냐고 윤아를 다그칠 수 없었다. 장 자성이 연하라는 말은 안 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11월에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됐다.
명단을 보니 낯익은 이름이 있는 것이다.
사립 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를 하던 이 진상의 여동생이었다.
경력이 있는 나는 정감독, 여동생은 부감독으로 만났다.
어머, 언니!
아니, 이게 웬일이야! 여기서 만나다니?
글쎄 말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언니가 재혼했다는 것 알고 있어요.
응, 그렇게 됐어. 윤아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잘하셨지요, 뭐......
여동생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 동생은 가족 중에서 가장 내 편이 되어 주던 사람이었다.
같은 교사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오빠가 언니 재혼한 사실을 알고
재혼할 거면 나랑 하지...... 그러더라고요.
둘이 쓴웃음을 짓고 감독관 임무를 수행하러
각자의 자리로 갔다.
수능시험이 다 끝나고 잘 지내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 진상이 끝까지 나를 놓지 않겠다고 행패를 부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소송으로 이혼을 한 이후에 술 마시고 방황을 한 모양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그 행패를 온 가족이 다 받고 있으리라는 것을.
윤아가 그 집을 왔다 갔다 해도 이 진상에 대한 얘기는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다.
다만 이제 사춘기를 맞은 윤아는 어린 마음에도
아빠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못다 한 사랑과 행복을 찾겠다고 재혼한 내가
이렇게 또 다른 방황과 불안에 빠진 것을 알면
이 진상은 이렇게 말하겠지.
그럴 거면 나랑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