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by Anima

전화를 하니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리야, 아버지 돌아가시려나 보다. 빨리 와라!


떨려서 차를 어떻게 운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오늘내일하시는데 편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부모님 병간호 휴직이라는 것도 있을 텐데

알아보지도 않고 내 할 일 하면서 나와 애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신 아버지를 외면했다.

아버지의 곁에서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유난히 많이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지 못했다.


현관을 들어서니 엄마는 이상하게 차분한 얼굴로

주방을 서성거리신다. 이제 생각하니 넋이 나가신 것 같았다.

혼자 그 상황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학교에서 조퇴한 윤아가 아버지 가슴에 엎드려서 울고 있고 큰언니는 울면서 채 감지 못한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작은 아들은 차치하고 비행 나간 큰 아들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눈을 못 감으신 것 같다.

병석에서도 나의 재혼으로 의절하고 부모님마저

거리를 두던 장남이지만 외국 가서 언제 오냐고 자주 물으셨다.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작은언니가 아버지 병시중을 하면서 한 말이 생각난다.


저렇게 사시느니 빨리 돌아가시는 게 낫겠어.

눈만 뜨고 계시니 사는 게 아니야.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힘들었으니 그렇겠지 하면서도 자식이 돼가지고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나도 언니처럼 계속 지켜봤으면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나는 아버지가 그런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고 스스로 곡기를 끊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실 때마다 먹을 것을 사 오시고

여름에는 엄마가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 올망졸망한 다섯 남매를 데리고 북한산에 올라 계곡에서 물놀이하던 모습, 세 자매 데리고 나가 새 옷 사입혀서 남산 팔각정에 올라 사진 찍고,

고등학생인 나와 중학생인 두 남동생 데리고 덕수궁에 가서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는 케이크와 입체 동화책을 사 오셔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던 아버지, 실향민으로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이 그리워

엄마와 만나 5남매를 두신 아버지가 밤마다 우시는 모습에 우리가 아버지와 자겠다고 품을 파고들던 기억들......


아버지가 60살을 몇 년 앞두지 않은 때였다.

출근을 하려고 나가려는데 엄마가 뜬금없는 말로 나를 붙잡았다.


아버지가 다방에 갔는데 손금 잘 보는 마담이

손을 잡더니 60을 넘기면 아주 장수하는데

건강관리 잘 못 하면 60 전에 죽는다고 했다더라.


그게 정말이에요? 말도 안 돼요!


거참, 아침부터 쓸데없는 말을 해서 출근하는 애를 울려.


엄마는 마담이 잘 생긴 아버지 손을 잡은 게 못마땅해선지, 아버지가 단명한다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모르겠다.

하나마나 들으나마나 한 말인데도 그때는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 눈이 퉁퉁 부어서 출근을 했다.


앞으로는 너희들이 나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사 와야 한다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충분한 보답을 못 받고 86세에 돌아가셨다.

다들 오래 사셨다고 했지만 지금도 시간을 되돌려 다시 아버지를 보고 싶다.

유난히 나와 세 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가 그립다.

이 진상과의 짧은 결혼, 장과의 재혼생활을 일기로 남기며 속상해하셨을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바삐 가려던 발길이 차 열쇠 때문에 지체되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은 것은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이 나와 아버지 사이를 이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아이를 키우며 고생할 막내딸 생각에 손 잡고 우시던 아버지께 이제 죄송하다는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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