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과제

by Anima

아버지의 장례식에 5남매가 모두 모였다.

출장 갔던 큰 남동생 부부, 미국에서 온 작은 남동생 부부,

이웃에 사는 큰언니 부부, 미국에서 와 한 달 동안 아버지 병시중을 했던 작은언니......

저마다 생전에 아버지께 효도하지 못한 한을 풀어내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불효라는 불효는 다한 것이 나였다.

초혼에 딸 낳고 1년도 안 돼 별거 끝에 7년 만에 이혼하고, 어디서 11살 어린 남자를 데려와 재혼해서 아들 낳고, 부모님께 큰애 맡기고 좋다고 결혼하고, 구구절절 말은 안 했지만 분위기로 알아채신 장과의 심상치 않은 결혼 생활 등.


윤아를 부모님께 맡기고 결혼했던 나 때문에 관계가 소원했던 큰 남동생과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말없이 재회했다.

6년 간의 앙금이 쉽게 해소될 수는 없었다.

두 남매의 의절과 장남으로서 부모님과의 소원한 관계에 얼마나 한을 품고 가셨을까 생각하니 끝없이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결혼식에 못 온 미국에 사는 작은 남동생 부부, 의절해서 안 온 큰 남동생 부부는 장과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비로소 얼굴을 본 것이다.

장은 말하자면 처남인데 두 동생들보다 나이가 어렸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


사돈부부들이 조문을 왔는데 장의 친가에서는 시부만 조문을 왔다는 것을 뚜렷이 기억한다.

직장 동료들도 오는데 시모가 얼굴도 안 비친 것에 내내 서운했다.

아파트로 입주하면서 주성과 현아만 데리고 왔었다. 윤아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이제 떼놓고는 못 살겠다는 부모님의 만류와 윤아도 학교 친구들과 헤어져 다른 환경을 접한다는 것이 싫다고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부모님과 윤아의 뜻에 더 우기지 못하고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주말마다 친정으로 가서 부모님과 윤아를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친정에는 엄마와 윤아만 남았다. 엄마는 남동생네로, 윤아는 내게로 와야 했다. 남동생 부부는 우리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엄마가 먼저 거부를 하셨다.

오래전부터 장남을 손님처럼 어려워하던 엄마다. 아들도 어려운데 며느리라고 쉬울까? 거기에 내 책임도 있다. 그래도 장남이 모시겠다고 하는데 엄마가 완강히 거부하니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당신 고집에 혼자 지내겠다 하셔도 윤아는 내가 데려가겠다고 했다.


윤아가 나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날에 갑자기 윤아를 데려가지 말라고 하셨다.

큰아들네로 안 가겠다, 윤아도 데려가지 말라,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윤아와 살겠다는 것이다.


엄마의 생각이 그러해도 끝까지 밀고 나가려고 했다. 끝으로 윤아의 의견을 물었다.

윤아의 마음도 반반이었다.

나와 동생들과 살고 싶지만 학교 친구들이 있는 이곳에서 할머니와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아직도 가끔 보는 아저씨와 한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와 윤아만 남겨 둘 수가 없었다.

윤아는 같이 살 수 있지만 소형아파트라 엄마까지 모실 수는 없었다.

큰아들이 모시겠다는 말을 거부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시니 난감했다.

결국 내가 엄마를 모시고 윤아와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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