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장을 모른 척하고 등을 돌렸다.
나 일본 가려고 하는데 돈 좀 줘라.
어이가 없어 바라보았다.
뭐라고? 어제 그런 일을 벌여 놓고 돈을 달라고?
어쩜 사람이 이렇게 뻔뻔해?
일본에 무엇하러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어제 벌인 일에 미안하다는 문자 한 통 보내놓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돈을 달라고 한다.
어제 술에 취해서 내게 하려는 말이 이것이었나 보다.
듣지도 않고 문을 닫아 버린 것에 자존심이 상해 그 행패를 부렸나 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의 폭력은 용서가 안 된다.
그 이후부터 한 집안 별거가 시작되었다.
한 집에서 말을 안 하고 살기로 했다.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리지도 않았고 세탁기를 돌리지도 않았다.
이 집에 우리 애들과 나만 사는 것 같이 행동했다.
자주 아래층에 내려가 엄마와 윤아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
애들은 이 집 저 집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그래도 애들은 아빠라고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장과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본 엄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 좋은 세상에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으냐.
서로 양보해서 싸우지 않고 살면 좀 좋아?
또 불효를 저지르며 그에게 선언했다.
여기서 살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단 내게 아내 노릇하기를 바라지 말아라.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간섭하지 말아라.
너도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이럴 바에는 헤어지는 것이 낫겠지만 서로 이혼하자는 말은 꺼낸 적이 없다.
나 역시 또 이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애들을 위해서 헤어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애들 때문에 계속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그래야 옳다.
행복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애들이 행복할까?
남 보기에 번듯한 남편, 아빠로 보이지만 속은 의지할 수 없는 썩은 울타리였다.
여의도에 있는 법률상담소를 찾아갔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법률 상담가는 기대와는 달리 실망을 안겨 줬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물부터 쏟아내는 나를 권태로운 표정으로 보다가 결혼 생활 내내 외도를 일삼고 생활비를 주지 않았으며 폭력까지 썼다면 충분한 이혼 사유가 된다고 했다.
정말 이혼하려고 간 것이 아니었기에 눈물만 짜내고 돌아섰다.
이혼은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를 계속 보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