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과 이혼할 마음은 없었다.
한 집에 살기도 싫었다.
그가 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었다.
아이들은 속으로는 상처를 받았겠지만 겉으로는 아빠와의 관계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나는 퇴근 후에 윤아가 있는 엄마네로 갔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나와 같이 있다가 밤에 내려가서 아빠와 지냈다.
아이들이 커가는데 아빠는 제 자리라 아이들과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날 주성이 말했다.
아빠는 왜 돈을 안 벌어?
수업 시간에 직업과 경제활동에 대해 공부하는데
갑자기 아빠가 생각나서 울었어.
친구들은 아빠에 대해 말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어.
애들에게 집안에 빨간딱지를 붙이는 것을 보게 하고 엄마에게 폭력을 쓰고 아들 손으로
경찰에 연락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빠란 사람이다.
술만 취하면 아이들을 앉혀 놓고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고 훈시를 해댔다.
이제는 애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어리지 않다.
장은 명절마다 나 없이 두 애만 데리고 시집에 다녀왔다.
얼마 전에 딸 하나 둔 동생 부부가 이혼을 한 상태라 며느리들 없이 시모 혼자서 명절 음식을 차렸을 것이다.
장과의 사이가 악화되기 전에는 혼자라도 가서
일을 했기에 큰며느리마저 없는 명절을 지내는
시부모 마음을 생각하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것도 오지랖이다.
장의 남동생 부부는 둘 다 은행원이라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집 사려고 모아 놓은 돈을 동생이 아내 모르게 주식에 투자해서 거의 잃은 데다가 주사까지 있어 술 먹고 시비가 붙어 두어 번 경찰서를 출입한 모양이다.
내 코가 석 자라 뭐라 참견할 수가 없었지만
전 동서와 모이면 서로 신세타령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이혼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결국은 헤어졌다.
나도 할 말 없는 사람이지만 그쪽도 두 형제가 쌍으로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
큰며느리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작은아들은 이혼하고......
장남인 장은 부모님에게 뭐라고 하고 있을까?
내가 말을 안 했으니 외도한 사실은 모를 것이다.
생활비를 안 준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 그것도 모를 것이다.
그저 내가 나빠서 시부모 알기를 개똥처럼 여긴다고 생각할 것이다.
매일 저녁 엄마네서 살다시피 하니까
엄마는 멋모르고 좋아하신다.
윤아는 자기 버리고 잘 살겠다고 간 엄마가
저 모양, 저 꼴이라 뭐라 할 수도 없는 눈치다.
윤아는 그 와중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비행기 승무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