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된 윤아는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내려가서 엄마와 같이 지냈다.
아빠 구실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기회에
아빠 노릇 좀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하루는 김치볶음밥에 달걀프라이, 다음 날은 햄에 김을 주다가 또 짜장면 시켜 주겠지.
또 술이 취해 들어오면 애들 나란히 앉혀놓고 일장훈시를 하겠지.
애들도 내가 그랬듯이 ‘이 시간아 빨리 지나가라’고 속으로 빌고 있겠지.
이렇게 별거 아닌 별거를 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던 내게 일이 생겨버렸다.
돈 못 버는 남편과 10여 년을 살다 보니 고정 수입 외에 어디 돈 벌 데가 없나 기웃거렸다.
그때 마침 동료가 동대문에 큰 상가 건물이 세워지는데 자기도 투자했다고 나보고 해보라는 것이다.
한번 가본다고 가볍게 따라나섰다.
분양을 받은 후 임대하면 한 달에 200만 원을 임대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기역에서 가까운 초역세권이라 금방 임차인이 나온다고 하였다.
상가는 80%까지 은행 대출이 된다고 계약금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혹해서 그 자리에서 1,700만 원을 주고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통장에 돈이 있었던 게 죄다.
장이 돈 벌어 오지 못한 게 죄다.
집으로 오며 생각해 보니 10% 계약금을 뺀 나머지 분양 대금을 지불할 일도 걱정이고 대출을 받더라도 그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매일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다가 고심하는 모습을 장에게 들켜버렸다.
장이 요때다 하고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이 계약서는 뭐고?
분양 좀 받았어. 상관하지 마.
좀 볼게.
......이거 사기 아니야?
사기는 무슨...... 저리 가.
이거 계속할 거야?
몰라, 돈도 없어.
해약해.
해약하면 계약금 안 돌려줄 텐데......
그리고 장은 분양사무실을 찾아가 우여곡절 끝에 700만 원을 떼고 1,000만 원은 준다는 확답을 받아왔다.
며칠 후에 1,000만 원이 계좌로 입금됐다.
장이 연애하던 시절 이후로 내게 도움을 준 첫 번째 사례다.
사례비는 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침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