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륵까르륵 떽떼구르 떽떼구르......
숨넘어가는 소리가 아니다. 쟁반에 까만 콩이 구르는 소리도 아니다.
나이 40이 넘어 장과 함께 무슨 불타는 사랑이라고 애를 낳았는지,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인 막내딸 현아의 웃음소리다.
현아는 참 잘 웃는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떼구루루 웃는다.
웃음소리가 마치 나무로 만든 쟁반에 젓가락 놀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쉴 새 없이 나무를 쪼아대는 것 같기도 해서 둔탁하면서도 빠른 운율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 문을 열기도 전에 들리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 숙제를 쌓아두고도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 것일지라도 끄라는 말을 못 한다. 피로회복제 같은 웃음에 청량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 막내딸을 부른다.
현아야, 엄마가 우울한데 리모컨 누르면 안 될까?
이제 그런 거 안 해. 창피하니까 하지 마.
어느 역술원에서 부부 사이가 원만하려면 딸이 10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주라고 했다.
스스로 납득이 갈 때까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나는 처음에 두어 번 해주고 말았다.
장과의 사이에 해결되지 않는 어려웠던 많은 날들이 그래서였을까.
현아 어렸을 때 낮에 혼자 계실 엄마를 위해 사놓은 퍼즐을 꺼냈다.
혼자 500개의 퍼즐 조각을 맞추고 신중하지 못한 선택을 한 내 탓을 하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하고 청승맞게 노래를 하고 있는데 방문이 빼꼼 열리며 현아가 들어왔다.
엄마, 괜찮아? 잠깐 기다려봐.
잠시 후 나타난 현아 손에 작고 네모난 상자가 들려 있다.
선물인가 했더니 TV리모컨 모양으로 숫자가 1~5까지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현아는 싱글싱글 웃으며 아무거나 눌러보란다.
내가 좋아하는 5번을 누르니, 갑자기 한 손을 주먹을 쥐고 입에 대면서 도날드덕처럼 오리 소리를 낸다.
푸륵푸륵, 꽉 꽉 꽉, 푸륵푸륵, 꽉 꽉 꽉
엄마, 재밌지? 재밌지?
오리 소리도 재미있었지만 아이의 진지한 표정에 웃었더니 또 하나를 누르란다.
이번에는 광고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그럴듯하게 춘다.
연습을 꽤 많이 했는지 제법이다.
그렇게 1번부터 5번까지 있는 장기를 다 보이는 동안 소리 내어 웃는 나를 보고 저도 흡족한지 또 까르륵 웃는다.
어렸을 때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분이고 20분이고, 분이 풀릴 때까지 울던 고집쟁이가, 이제는 힘들어 보이는 엄마를 웃게 만들고 심신을 편하게 해 준다.
어느 날은 야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들어와 화장을 지우지도 않고 앉아 있는데 손을 잡아끌며 자리에 누우라고 한다. 얼굴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더니 영양크림을 얼굴과 목에 골고루 바르고 턱 아래부터 문질러 댄다.
마치 피부관리사라도 된 양,
피부가 많이 상하셨네요. 계속 관리를 받으셔야겠어요.
짐짓 노련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너스레를 떤다.
두어 번 수건을 갈아대며 살살 문지르고 닦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나 보다.
손님, 다 됐어요. 주무시지 마세요.
내 얼굴을 만지던 작은 손을 잡으며 물었다.
현아는 엄마가 학교에 가면 싫지?
아닌데, 왜?
다른 친구 엄마보다 나이가 많잖아.
난 그래도 엄마가 좋아. 난 커서도 결혼 안 하고 엄마랑 살 거야.
그렇게 말은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결혼하겠다고 하겠지.
오늘은 출근길에 차조심 하라며 걱정해 주는 막내딸과 오랫동안 웃고 살고 싶다.
장과의 불화와 상관없이 늦게 얻은 자식 덕에 저절로 젊어짐을 느낀다.
막내딸의 웃음소리가 있기에 잠시라도 근심을 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