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간에는 집에 올 때 전철 대신에 버스를 탄다.
당산역 환승역에는 저녁 7시가 가까워 오면 줄이 뱀처럼 늘어서 있다.
바닥에 정차하는 버스 번호가 쓰여 있고 이제는 익숙해서 사람이 많아도 어디에 서야 하는지 아는데 처음에는 어디가 어딘지 몰랐다.
그날도 여러 버스의 줄이 이어져 있기에 끝에 있는 젊은 여자에게 00 버스 서는 곳이냐고 물었다.
얼굴을 들이대고 코 앞에서 물었는데 눈길도 안 주고 묵묵부답이다.
어, 요것 봐라?
할 수 없이 몇 걸음 더 가서 대답해 줄 만한 관상을 찾아 물었다.
맞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길벗들과 대화하다가 요즘 젊은것들이 누가 뭘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고 말을 꺼내자 몇몇 사람들이 맞장구를 친다.
나도 그랬어요. 노인보다는 대학생 같아 보이는 애가 알 것 같아서 물었더니 쌩하고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같은 나이대에서 물어봐야지요.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던데요.
너무 나이 드신 분들은 안 돼요.
친절하긴 한데 어디로 가라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잘 안 묻게 돼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찾는 게 낫지.
나도 원래 길을 찾을 때 잘 안 묻는 사람이었다.
가다 보면 나오고 감으로 짐작해서 가면 신기하게 길을 찾았다.
시간이 금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무시하던 때였다.
시간이 남아돌아 발에 치이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나 잡아봐라 하고 쏜살같이 달아나니 길 찾는 시간이라도 줄이려고 한다.
길잡이 하면서 처음 가본 길을 공지해서 간 적이 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출발하면서 사실 이 길 잘 몰라요, 처음 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누구는 솔직하고 신선하다고 하고 누구는 자기가 잘 아는 길이니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 길벗 덕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제 길로 잘 찾아갔다.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몇몇 길벗들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길잡이가 되어서 이리저리 헤매는 꼴이 좋지 않아 가끔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한다.
십중팔구는 동네 사람이라 자세히 길을 안내해 준다.
어제는 전철 안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밀려들어 연결 부위 통로 가운데서 기둥 손잡이를 의지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옆으로 오더니 자꾸 팔로 건드렸다.
옆을 보니 틈이 조금 있는데도 내 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다 빼더니 무언가 하얀 것이 내 발 옆으로 떨어졌다.
곁눈질로 보니 그 남자는 뭔가 떨어진 것을 모르는지 줍지 않았다.
나는 발을 옆으로 살짝 옮겼다.
앞에 서 있던 두 여자 중 한 명이 손을 들더니 어어, 하다 말았다.
그 남자는 봤나 못 봤나 잠시 그대로 있었다.
내 발 옆에 떨어졌으니 나보고 책임지라는 뜻인지......
그 시간이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다.
내가 말해줘야 하나 생각하다 모른 척하기로 했다.
결국 그것을 남자가 주웠다.
뭐 하자는 시추에이션인지......
나도 말하기 싫을 때가 있다.
모른 척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답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뭐라고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