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 유발자

by Anima

이번 주에는 같이 걸을 길벗들이 없어 두 번을 쉬었다.

화요일에 한 명, 오늘 한 명이 참가한다더니 취소를 해버렸다.

길잡이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도 참가 댓글을 달지 않아도 취소하지 않고 혼자라도 걸었는데 이제는 공지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글을 내려 버린다.

취소를 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갑자기 몸살이 났어요.

딸이 손주를 봐달라고 해요.

멀리서 친구가 왔어요.

갑자기 약속이 생겼어요.

문상을 가야 해요.

가족 행사가 있는 것을 깜빡했어요.

(길잡이와 단둘이 걷는 것이 어색해요.)

취소는 댓글에만 달아도 충분한데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

딴에는 취소를 하니 미안해서라고 한다.

미안하고 죄송할 것도 없다.

살다 보면 변수가 생기고 선약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일일이 문자나 전화를 해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알릴 필요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댓글로 ‘개인 사정으로 취소합니다.’ 쓰면 된다.

취소가 미안하면 죄송하다고 한 마디 덧붙이면 좋겠다고 했더니 주에 한 번 정도 나오는 어떤 길벗은 뭐가 죄송하냐고 그 말은 안 쓸 거라고 한다.

내가 만약 취소할 일이 생기면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무척 미안할 것 같은데,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길벗을 멀뚱 바라보고 말았다.

길잡이를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가 길잡이들이 댓글이 달렸는데도 취소를 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같이 걷는 것도 지켜야 할 약속인데 부득이한 사정이 너무 자주 생긴다는 것이 문제다.

보수 없는 봉사직이라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약속이 어긋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날을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할 일을 미루었는데, 취소해야 하는 그쪽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웠다. 그런 후에 내가 길잡이를 하면 취소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첫발을 내딛었다.

이제 한 사람이라도 같이 걷는다면 취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길벗들이 다 알고 있다.

오히려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이 자기 혼자일 때 꺼려져서 취소를 달고 만다.

특히 내향적인 사람이 길잡이와 둘만 걷는다 생각하면 편치 않을 것이다.


올가을이면 길잡이 3년에 1,000회가 되는데 단둘이 걸은 경우는 7~8회가 되는 것 같다.

정말 둘이 걷는 것인지 문자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쪽에서 먼저 취소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취소를 한 일은 없다.

이번 주에 취소한 두 명은 짐작하건대 둘이 걷는 것이 부담스러워 취소한 것 같다.

내가 무서워? 폭 빠질까 두려워?

길벗들과 걷지 않는 날은 핑계 김에 모처럼의 휴식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 글에 라이킷 해주신 브런치 작가들 글을 읽는다.

간단히 아침 먹고 대청소한 후에 음식 몇 개 만들어 놓고 이렇게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있다.


목감기로 목소리가 안 나와도 나갔고, 전철에서 갑자기 쓰러진 날도 취소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길벗들이 아니마 쓰러지겠다고 무리하지 말라고 작당 모의를 해서 나를 집안에 붙들어 매 놓은 것 같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