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유감

by Anima

지하철 대합실에서 한 명은 쫓고 한 명은 쫓기고 있었다.

남자 중늙은이가 한 여자에게 큰소리를 쳤다.


개를 안고 다니면 어떻게 해?

당장 나가지 못해?


왜 그래, 왜 그래? 네가 무슨 상관인데?


젊은 여자는 강아지를 안고 전철을 타려 하고 남자는 자꾸 나가라고 하며 언쟁이 벌어졌다.

여자는 남자의 도발에 맞춰서 반말을 하는데 말과 행동으로 보아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도 같다.

그래도 강아지를 지키려고 멀찌감치 도망가며 뭐라 뭐라 하고 있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 대형견은 안 되지만 소형 반려견을 동반하려면 가방에 넣어 보이지 않게 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게 하면 탑승이 허용된다고 한다.

그 여자는 소형 반려견을 목줄도 없이 품에 안고만 있었다.

마침 전철이 도착해서 재빨리 여자가 타려는데 남자가 뒷덜미를 잡아채며 못 타게 막았다.

완력을 이기고 억지로 한 발을 들이밀었는데 남자가 더 세게 잡아끄니 타지 못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 어' 하며 위험함을 느꼈다.

기어이 여자를 밀어낸 남자는 구시렁대며 자리에 앉았다.

거의 대부분은 '저러고 타면 안 되는데' 하고 말 일을 그 남자는 굳이 완력을 쓰며 끌어내렸다.

그리고 개선장군처럼 동조를 바라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만 나 혼자 눈으로 욕하며 속으로 말했다.

‘저 영감탱이 왜 저래?’


관악산에 갔더니 쉼터 근처에 야생견이 출몰하니 먹이를 주지 말라는 말과 대응하지 말고 모른 척하고 가라는 경고문이 쓰여있다.

등산객들이 쉬다가 야생견들이 오면 먹을 것을 주곤 해서 가끔 나타난다고 한다.

마침 백구 한 마리가 등산객들이 쉬고 있는 길로 가려고 하다가 우리를 보고 다른 길로 달아났다.

여러 마리가 나타나면 무서울 텐데 한 마리를 보니 측은해졌다.

'겨울에 뭐를 먹고살았니, 가져온 간식을 주고 싶지만 주지 말라니 어쩌니.

친구들은 다 어디 있니, 털은 씻은 듯 하얗구나!'


어렸을 때 동네 골목에서 개가 나타나면 무서워서 도망 다닌 기억이 있다.

끝까지 따라와서 물은 개는 없는 것을 보니 그때는 개들도 순했나 보다.

어렸을 때 집에 개 두 마리가 있었는데 그리 애착을 가진 기억은 없다.

사진을 보니 남동생 둘은 강아지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개를 안고 있는 사진과 같이 뛰어노는 사진이 남아있다.


어느 날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서류봉투에 넣어 안고 오신 아버지를 보고 탐탁지 않아 하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조그만 꽃밭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엄마가 정성을 들여 가꾼 꽃들을 강아지들이 뭉개놓았다.

며칠 후 엄마는 아무 통고도 없이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 버렸다.

나머지 한 마리를 데려가는 개장수의 자전거를 쫓아가며 울부짖던 남동생 모습이 꿈이런가.....

내 기억에는 없는데 남동생 기억에 의하면 한 마리는 강냉이와 바꾸어 먹었다고 한다.

아, 엄마! 그 강냉이 나도 먹었겠지?


대방동 공군본부가 있던 자리에는 논밭이 많았다.

큰다리, 작은다리라고 부르던 다리 밑으로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이면 노래 부르며 산책 나가던 길에서 노릿한 냄새가 났다.

나무판에 죽인 개를 묶어놓고 불로 그슬리는 장면이었다.

너무 끔찍해서 그 후부터 보신탕 먹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았다.

직장 회식 때 보신탕을 먹는 사람의 얼굴은 자기가 먹은 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아파트단지를 드나들 때 보면 셋 중에 하나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유모차에 아기가 있나 보면 강아지나 노견이 점잖게 타고 있다.


큰딸도 강아지를 키운다.

같이 살 때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개는 못 키운다' 했다.

강아지를 키울 바에는 차라리 애를 입양하라고도 했다.

딸이 독립하고 나서는 강아지를 분양받아 애 키우듯이 돌본다.

어찌 보면 강아지가 큰딸을 돌보는 것도 같다.

가끔 가서 보면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다.

고작해야 견생이 15년에서 20년인데 무지개다리 건널 때를 생각하면 그 슬픔을 어찌 감당할까 지레 걱정이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