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주리와 장 자성이 결혼을 앞둔 시점에 윤아가 10살이 되었다. 봉 주리가 직장을 다니는 동안 아빠 없는 자리도 채워 주신 부모님 덕에 구김살 없이 예쁘게 자랐다. 윤아 어릴 때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동화책을 한 권씩 읽어 주었다. 졸린 눈에 엉뚱하게 읽으면 다시 고쳐 주던 윤아에게 낭송 CD가 포함된 20권짜리 전래 동화 전집을 사줬다. 옆에서 엄마는 잠을 청하고 있는데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펴놓고 CD 전체를 다 듣고야 자던 윤아였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또래보다 말도 잘하고 이해가 빠른 편이었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재혼해야 하는 사정과 이유를 말해줘야 했다.
윤아야, 엄마가 오늘은 윤아에게 할 말이 있어. 더 일찍 말하려고 했는데 복잡한 일이 많아서 늦어졌어.
엄마 아기 가진 것, 결혼한다고 말하려는 거지? 할머니, 할아버지께 다 들었어. 나는 여기서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아야 된다고 그러시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아저씨가 내게 잘해주시지만 아직 어색해.
미안하다, 윤아야. 엄마는 바로 아랫집에 살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윤아 보러 갈 거야. 그러니까 같이 사는 거나 마찬가지야.
사실 엄마랑 떨어져 사는 거 싫은데 엄마가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까 좀 괜찮아.
윤아에게 못할 짓을 하는 봉 주리는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윤아의 표정만 살폈다. 윤아가 지금은 내색하지 않아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테고 아기가 태어나면 또 어떤 생각을 가질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봉 주리는 단단히 뭉치는 뱃속의 아기를 느끼며 윤아의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었다.
재혼인 봉 주리는 결혼식이라는 요식 행위를 다시 하기 싫었지만 초혼인 장 자성과 그 부모님 입장에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결혼식은 출산 뒤로 미루고 혼인신고부터 하기로 했다. 점점 배가 불러 주변에서 신상의 변화를 알아채도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구청에 가서 신고서를 작성했다. 신고서 양식에는 ‘직전 혼인 해소 날짜’를 적게 되어 있었다.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재혼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봉 주리는 초혼인 장 자성 앞에서 순간 민망함을 느꼈다. 작성한 신고서를 검토하던 담당자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아마도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눈에 띈 모양이다. 담당자는 처리하려면 1주일 정도 걸린다며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며칠 후면 법적으로 엄연한 부부가 된다. 부부가 된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진 두 사람은 구청을 나서며 서로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혼식 전까지는 각자의 집에서 살기로 하고 봉 주리는 장 자성을 그의 집 앞에 내려 주며 말했다.
자기와 서류 몇 장으로 부부가 되니 기분이 이상하네. 또 같이 안 사니 더 이상하네. 그래도 이제 불안하지 않아서 좋아.
장 자성이 봉 주리의 손을 잡고 엷게 웃으며 말했다.
전셋집도 자기가 얻게 해서 내가 미안하네. 난 숟가락 하나만 들고 가면 되지?
그럼, 내가 다 알아서 하잖아. 자기는 내 곁에만 있으면 돼.
통상적으로 남자가 할 말을 여자가 하는,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지만 사랑하니까, 곧 부부가 되니까 봉 주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장 자성은 봉 주리가 떠날 때까지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