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없이 사는 여자

by Anima

나의 걷기 신조는 세 가지다. 걷고 먹고 찍고, 이름하여 쓰리고다.

걷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11시 30분에 모이면 먼저 점심을 먹는다.

식당은 걸을 장소를 정한 후에 맛집을 검색하거나 추천을 받아 간다.

먹고 걸으면 배 부르게 먹어도 안심이 된다.

걷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가끔 찍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이번만 찍고 다음부터 나오지 말라고 한다 웃으며 말하지만 아주 불친절한 길잡이다.

그래서 한 번 걷고 안 나오는 길벗들이 종종 있다.

한편으로는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는 길벗들이 있어 기분 좋게 사진 찍어서 걷기 카페에 올린다.

눈 감은 사람이 있는 경우만 빼고 다 올리니까 누군가 후기를 사진으로 도배한다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 100장, 최저 30장 정도를 거의 매일 카페에 올린다.


배불리 먹었으니 천천히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한 후배 길벗이 생전 처음 듣는 말을 했다.


"아니마님은 뇌가 없는 사람 같아요."


남산타워가 보이는 쉼터에서 사진 찍으며 쉬다가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밑도 끝도 없고 그전에 어떤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다. 걷기나 하지 사진을 많이 찍어서 그런가, 왜 저런 말을 하지 이상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뇌가 없나 보다. 그럴 때는 "무슨 뜻으로 한 말이야?" 요렇게 정색을 하고 물었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 무뇌아야,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 그런데 한편으로 예민한 주리거든. 연기하는 거야."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것 같다. 그러고도 속없이 웃으며 헤어져 집으로 오는데 점점 화가 올라오는 것이다. 주위에 있던 몇 사람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평소에 침착하고 평정심을 갖춘 다른 길벗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도 그 말을 듣고 왜 저런 말을 할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거기에 화내지 않고 잘 대처했다고 위로를 해준다.


화를 안 낸 것이 아니라 둔감한 것이다. 왜 그 즉시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갔는지 후회가 되었다.

따지고 들면 사이가 나빠질까 봐 한참을 망설이다가 망발을 한 장본인에게 카톡을 했더니

무뇌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생각 없이 산다고 했다나? 이거나 저거나 망발은 마찬가지.

생각 없이 산다고 한 것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주변 여러 사람이 들은 무뇌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니 황당하다. 오히려 그때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라고 한다. '바이든 날리면' 사건 이후에 최대 오리발이다. 그 말을 입밖에 냈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하니 더 화가 난다. 자기 방어기제의 발동인가.

궁색하게 한다는 변명이 추운데도 레깅스 입고 다녀서 생각 없이 산다고 했단다.

생각 없이 산다는 말은 잘못이라 사과하지만 뇌가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과할 수가 없다?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 아닌가.


여보세요, 레깅스 아니고 털 북슬한 기모 바지예요. 춥든 덥든 알아서 입는데 뇌가 없는 것 같다고요?

변명을 하고 자기 방어를 해도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앞뒤 다 자르고 뜬금없이 하는 그 말이

바로 뇌 없는 사람의 언어 사용 수준을 말해 주네요.

다음부터 아니마 길에서는 만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영어 좀 하지요? Please.


이렇게 대놓고 말도 못 하고 글이나 쓰고 앉아 있는 내가 뇌 없이 사는 건 맞나 보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