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옮길 때가 됐어

by Anima

처음 걷기 동호회에 가입한 것은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학생 때는 주변 친구들도 운동에 관심이 없어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직장에 다닐 때부터 동료들 따라 볼링, 테니스, 골프, 헬스를 조금씩 해왔고 수영은 거의 20년을 했었다.

퇴직 후에는 모두 그만두고 주말마다 국내 여행을 다니다가 그마저 시들해져 두 다리만 건강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걷기 동호회를 찾았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 집순이 성격이라 혼자서는 걷겠다고 나가는 일이 없었는데 동호회에 가입하고 나서는 걷기 공지가 뜨면 주에 서너 번씩은 나간 것 같다.


2년 정도 남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다니다가 나도 해보자고 나선 것이 길잡이 노릇이다.

처음 깃발을 드는 날은 대모산 걷기를 공지했다.

찾기도 쉽고 오르기도 편한 곳이지만 처음이라 다른 길잡이의 도움을 받았다.

30여 명이 참가해서 걷다가 무대가 있는 곳에 이르러 준비한 간식도 먹고 노래를 부르면

몇 명이 거기에 맞춰 춤도 추어 길잡이의 첫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길잡이가 되었으니 이 기운이 가시기 전에 후속 공지를 해야 한다. 마침 한 후배 길벗이 양수리에 있는 부용산에 가고 싶다고 공지를 부탁했다.

이때다 하고 신나게 공지문을 작성해서 카페에 올렸는데 며칠이 지나도 그 후배 외에는 참가하겠다고 댓글을 다는 사람이 없었다.

보통 길잡이를 시작하고 첫 번째 본격적 공지에는 운영진이나 길잡이들이 예의상 참가해 주는 일이 불문율이건만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으니 난감했다. 처음 입문하는 날에는 우르르 왔다 가더니 단독 공지 한 날에는 휑하니 찬바람이 불었다.


아, 이 카페에서 나는 헛살았구나!

만감이 교차하려는 찰나 정신 차리고 개인적으로 같이 갈 사람을 수소문했다. 같은 구민이기도 한 길벗 두 사람에게 전화해서 내 차로 네 사람이 출발을 했다. 뒤이어 공지를 늦게 봤다는 길벗이 뒤따라와서 다섯 명이 부용산을 걷고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후로 크게 실망하여 단 두 번 만에 길잡이 생활을 끝내고 다른 길잡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로 했다. 이렇게 편한 것을! 걸을 길 검색해 공지문 작성하고 몇 명이 댓글을 달았나 신경은 왜 쓰고 다녔나.


몇 번 따라다니다가 꾀가 나서 집에서 멀거나 힘든 코스는 안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한 길벗이 다른 카페를 소개했다.

한 카페만 다니지 말고 자기가 다니는 곳에도 좋은 길이 많으니까 오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이 카페가 정이 들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미련 따위 던져버릴 일이 생겼다.

이 카페에는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길벗 선배가 있었다. 볼 때마다 서로 정겨운 인사로 반가워하는 사이였다.


어머, 자기야 반갑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입고 다니면 부끄럽지 않아?


반가운 인사 후에, 내 차림새를 훑어보며 정색을 하고 내뱉는 말에 썩은 미소만 짓고 말았다.


내가 산에 오면서 비키니를 입었나?

자다 말고 잠옷 입은 채로 나왔나?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걸쳤나?


대학생 시절을 빼면 엉덩이가 부끄러워 주로

치마를 입고, 바지를 입어야 할 때는 가릴만한 긴 웃옷을 입었다. 가벼운 등산이나 걷기 시작할 때는

대놓고 등산복이 싫어서 전에 입었던 골프복을 입었다. 그때는 골프복 중에서 치마레깅스를 입은 날이었다.


내가 뭘 입든 무슨 참견인지, 심지어 부끄럽지 않냐고? 엉덩이가 부끄러워 치마레깅스를 입었더니 한 술 더 뜨시네. 나는 등산복이 싫고 골프복이 좋아서 계속 입고 나올 테니 신경 끄시지.


겉으로 내뱉지 못하고 조용히 길벗이 알려 준 다른 카페에 가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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