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봉 주리는 근무하는 학교에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며 혼인 한 사실을 신고했다. 부양가족 수당을 받고 연말 정산에 혜택을 받으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달라진 가족관계증명서를 내려니 봉 주리는 장 자성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거북스러웠다. 전남편과 이혼 후 달라진 가족관계를 신고할 때처럼 편치 않았다. 얼마 안 가서 암암리에 봉 주리의 신상이 학교 안팎으로 나돌았지만 개의치 않고 모른 척하고 지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는 시기에 겨울 방학을 보내고 며칠 산가를 받아 봄방학에 아기를 출산하기로 한 것이다.
봉 주리로서는 10여 년 만에 출산을 하는 것이기에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사주, 작명, 지금은 용어도 생소한 바이오리듬에 관심을 가지셨는데 신체 리듬이 최고로 높은 날짜를 정해 수술 날짜를 잡으라고 하셨다.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봉 주리가 37살에 출산을 하는 만큼 딸의 몸 상태가 최대한 좋은 쪽으로 정해 주신 것이다. 봉 주리는 형제자매 중에 최대의 불효녀인데도 아버지에게는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전남편과 이혼한 후에 비타민E를 사다 주셨다. 비타민E의 성분 중에는 항산화 작용, 여성호르몬 균형, 피부 건강에 이로운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아직은 젊은 딸의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혼자 살아도 건강하게 여성성을 유지하라는 의미의 부성애였다. 그 덕분에 30대 중반에 장 자성을 만나 ‘ 대단한 놈’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술은 예정 출산일 2주 전후로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버지가 정해주신 최고조의 신체리듬을 따라 날짜를 잡았다. 아직 진통도 하지 않았으니 멀쩡한 몸으로 오전에 입원하고 수술을 했다. 주사를 맞고 숫자를 세다가 '산모님 일어나세요'라는 간호사 말에 눈을 뜨니 다 끝나 있었다. 예상한 대로 ‘대단한 놈’은 아들이었다.
수술을 했기 때문에 다음 날로 퇴원을 못하고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처치를 받으며 지냈다. 틈틈이 아기를 보러 신생아실로 내려갔는데 간호사들이 며칠 안 된 아기를 보고 이 병원에서 제일 잘 생긴 아기라고 말해주었다. 모든 산모들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기가 없이 피부가 뽀얗고 제법 우뚝한 콧날이 느껴지는 아기를 보며 그도 맞는 말일 거라고, 장 자성을 닮았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흡족해했다.
11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식도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배가 부르더니 산가를 받아 출산을 한 봉 주리의 삶은 누가 봐도 평범치가 않다.
생각해 보면 조용히 살려하는데도 봉 주리는 뭔가에 부딪히며 살았다. 별 잡음 없이 사는 언니들에 비해 부침이 많은 것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매를 맞아도 혼자서 도망갔다는 말을 들으니 별난 아이였던 게 틀림없다.
성격이 팔자라는 말에 수긍하며 성격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격이 평범치 않은 여자가 평범하게 살지 않겠다고 누누이 말하는 남자를 만나서 장벽을 뚫고 나온 ‘대단한 놈’을 낳았으니 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