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5)

by Anima

# 윤아


아빠가 아침 일찍 나를 안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는 잠자던 그대로 잠옷을 입고 있다.

언니, 오빠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재잘대며 가고 있다.

옆으로 가다가 우리를 힐끔 보고 또 갈 길을 간다.

아빠는 나를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앉혀 놓고 누구를 기다린다.


멀리서 엄마가 우리를 봤나 보다.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주변을 살펴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애를 잠옷만 입혀 가지고 무슨 짓이냐고?

애 안 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빨리 집으로 와. 윤아가 안 보고 싶어?

그때 엄마를 아는 사람인 듯, 한 사람이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그냥 지나친다.

어른들은 눈치가 빠르다. 그럴 때는 그냥 지나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정말 창피해 죽겠네. 누가 못 데려가게 했는데, 출근길에 그러지 말고 친정에 데려다 놔.

나 늦었어. 윤아야, 나중에 보자. 안녕!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엄마를 찾지는 않았다. 언젠가 엄마가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행동은 정상적인 것 같지 않다. 잠옷 차림의 나를 안고 엄마 출근길에 나타나다니......

바삐 가면서 언니, 오빠들 사이에 섞이는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엄마는 집에 있을 때보다 예쁘다.

파란 원피스를 나부끼며 학교 문 안으로 사라지는 엄마는 잠옷만 입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나 같은 건 잊어버렸나.


아빠는 다음 날에도 그 길로 나를 데려갔다. 이번에는 속옷 차림이다. 긴 바지라서 잠옷보다는 덜 창피하다.

나는 점점 무표정이 되어 간다. 내 속마음을 드러내봤자 누가 알아줄 것 같지도 않다.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겉으로 나타나지 않게 숨긴다.

잠옷이면 어떻고, 속옷이면 어떤가. 표정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오늘 나는 아빠의 인질인 것을.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언니와 오빠들이 교문 안으로 다 사라질 때까지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아픈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빠를 피해 일찍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려고 한다.

엄마를 만나지 못했어도 괜찮다. 엄마가 일부러 나를 피한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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