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4)

by Anima

# 윤아


할아버지가 엄마를 방으로 불렀다.

잘 생각해 봐라. 윤아도 있고 교수 됐다고 저렇게 와서 난리를 치니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니?

교수요? 몇 시간 강사 자리 얻었겠지요. 부모도 미덥지 못해 뒷받침해 주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고도 한참을 생각하던 엄마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에요.

아빠 없이 살아갈 윤아를 생각해서

한 번 더 믿어 볼게요. 내일 윤아 데리고 갈게요.

그래 내가 잘못했어. 내일 저녁에 데리러 올게.

엄마는 아빠가 무능력한 데다 가족들에게 폭력적이고 대화가 안 통해서 못 살겠다고 했다.

아빠는 교수가 됐고 폭력적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대화가 통할지 안 통할지 궁금한 채로

엄마를 따를 수밖에 없다.


아빠를 따라간 곳은 아빠의 엄마, 즉 친할머니 집이다.

신사동 주택가에 자리한 2층집인데 우리는 2층 구석에 있는 다락방 같은 곳에 살고 있었다.

1층에 방 두 개는 할머니, 할아버지 방, 2층 한 방은 세를 주고 또 한 방은 세를 받으면 되지만

할머니는 인심 써서 우리에게 주는 거라고 했다. 우리 식구를 공짜로 살게 해 준단다.

엄마가 말은 안 해도 마음이 편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부모님과 합치자 해서 들어왔는데, 이런 대우야.

개포동 아파트에서 살게 해 준다고 해놓고 겨우 다락방 신세야.

그때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왜 다시 만나서 이 고생일까, 내 팔자야.


여긴 그래도 내 엄마 집이야. 너네 친정에서는 뭐 한다니?

다른 집은 집도 사주고 사위에게 목돈도 척척 준다는데, 넌 뭐냐?

이것도 장롱이라고 해왔니? 어디서 싸구려 같은 것을 혼수라고 해왔어?


이래서 엄마가 대화가 안 통한다고 했나 보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아빠가 참 유치하다.

그래, 열쇠 3개라는 사자라도 되시나 그런 요구를 하시게?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말싸움을 하던 아빠가 갑자기 할머니를 불렀다.

엄마, 나 이 사람과 못 살겠어. 이혼시켜 줘.

싸움은 아빠가 할머니에게 이혼시켜 달라고 하면서 코미디가 된다.

이혼? 당신이 하기 싫어했잖아. 이혼을 누구더러 시켜 달래?

할머니는 막무가내 아들을 보다 못해 네가 참아라, 참아라, 엄마를 말린다.


할머니도 아빠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썩는다.

언젠가는 아빠가 여동생과 할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는데

그 사실을 학교에서 근무 중인 엄마에게 알리면 다 죽인다고 했단다.

그것을 모두 쉬쉬하고 있었는데 증조할머니가 엄마에게 이르고 말았다.

평소에 아빠를 애지중지하는 증조할머니라 이상한 일이다.

증조할머니가 밖으로 도는 할머니를 대신해 귀하게 키우는 바람에 아빠가 안하무인으로 자랐다는 말도 있다.

결혼하면서 방향을 튼 아빠의 폭력적인 언행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식구들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아들, 오빠의 성격과 언행을 아는 가족들은 엄마의 등장으로 한숨 놓으려 했는데, 오산이었다.

언젠가는 여동생, 즉 고모와 싸우고 팔을 부러뜨렸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를 때릴지언정 맞고 살 사람이 아니다.

아빠가 계속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니 울화를 참지 못한 엄마가 파리채를 들고 아빠를 위협했다.

아빠가 나를 재빠르게 무릎에 앉히는 바람에 엄마가 움찔하면서 파리채를 내려놓아 위기를 넘겼다.

나는 울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이 신기하고 놀라워서, 말 그대로 경이로워서 바라만 보았다.


이제 끝났나 싶어서 아빠의 무릎에서 슬그머니 내려왔는데 갑자기 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발버둥 치던 엄마가 뒤로 손을 뻗어 아빠의 목을 할퀴자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놓았다.

아빠의 목에는 빨갛게 피가 비치고 엄마는 손자국이 난 목을 어루만지며 울부짖었다.

이제 끝났어. 딸 앞에서 목을 조르는 남자와는 절대 못 살아!

파리채 들고 위협한 사람이 누군데 그래?

윤아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니까 그렇지, 맞지 않으려고 어린 딸을 방패로 삼아? 그래도 당신이 아빠야?

이혼해. 그렇게 노래만 부르지 말고 이혼하자고!


엄마는 흥분해서 내게 옷을 입히고 나를 안고 현관으로 나왔다.

애 데리고 어딜 가? 애는 놓고 가.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애를 맡길 수가 없어.

내가 키울 거야.

그 순간 아빠가 엄마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다시 엄마의 반격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빼앗긴 나를 잠시 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엄마,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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