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3)

by Anima

# 윤아


아기가 눈이 똘똘하네. 엄마 눈 닮았나 봐.

여러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머리숱은 없는 편이네. 아빠 닮았나.

그저 예쁘다고 하면 될 걸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많다.


엄마는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가고 난 뒤에 나를 안아 주었다.

엄마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안하다. 윤아, 이렇게 예쁜 너를 잃을 뻔했는데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내 이름은 윤아, 예쁜 이름이다. 진실한 아이라는 뜻이란다.


엄마는 직장에 나가는 시간 빼고는 내 곁에 있는데 아빠라는 그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즉 엄마의 부모님이 늘 같이 계신다.


이제 애 보러 나타나지도 않네.

안 나타나는 게 좋아요.

그래도 애 아빠인데 가끔은 보러 와야지.

절대 이혼해 주지 않겠다니 이렇게 별거라도 해야지 같이는 못 살겠어요.

아버지, 어머니께는 정말 죄송해요.

우리는 너만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는데 원, 무슨 일인지.

며칠 있으면 윤아 돌인데 아빠도 없이 어떻게 할래.

집에서 우리끼리 간단하게 해요. 그쪽에 알릴 필요도 없어요.


며칠 후 엄마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내게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혔다.

과일과 떡으로 한 상 차리고 이모와 이모부,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들이 모였다.


윤아가 6개월쯤 됐을 때 달력에 숫자를 보이며 읽어 줬는데,

1은 하나야 하니까 하나, 하고 따라 하더라.


아기 키우는 엄마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거짓말을 한다더니

내가 하나라고 했을까, 엄마가 잘못 들었을까?

이건 오래 살기를 바라는 실이고, 돈은 부족함 없이 잘 살라는 뜻이고,

이건 공부 잘하라는 공책과 연필이야, 이건 말 잘하는 마이크, 어떤 것을 잡을까?

상에 늘어놓고 잡으라는데 나는 엄마의 초록색 원피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윤아 좀 봐라, 엄마 옷이 탐나나 보다. 윤아야, 어서 집어. 돈이나 공책으로.

할머니가 재촉하시는 바람에 다시 상을 보니 신기한 것들이 많다.

아직 돈은 쓸 데가 없고, 공책이나 연필은 나중에 쓰고, 아무래도 장난감이 좋겠다.

윤아가 아나운서가 되려나, 공부를 잘하려나?

장난감 마이크를 쥐고 좋아하니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다들 퍼런 종이, 누런 종이를 잡으라고 밀어주는데 갖고 싶지 않다.


그때 밖에서 누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윤아, 아빠다. 아빠가 교수 돼서 왔어. 나와 봐라!

온 동네가 떠나가게 큰 소리로 나와 보라고 한다.

베란다로 나간 엄마는 동네 사람들 보기 민망해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창피해 죽겠네, 정말.

윤아, 아빠 교수 됐어. 이거 봐. 교수 임명장이야.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어 엄마는 문을 열어 아빠를 만났다.

나 교수 됐다니까, 정말이야. 이제 집으로 가자.

교수인지 교수형인지 내가 알 바 없으니 윤아만 보고 가요.

이제 안 그럴게. 당신 괴롭히지도 않을게. 이제 교수 됐으니 윤아랑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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