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런지 몰라(2)

by Anima

준비 운동이 끝나고 야트막한 산을 오르다 적당한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맞춤도시락을 먹었다. 경과 나도 아무 일 없는 듯 맞춤도시락을 들고 몇몇 길벗들과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마친 후 사진을 찍고 또다시 걷다가 버스에 올랐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버스가 머물렀다. 휴게소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데 경이 간식을 사 온다고 했다. 매점으로 가려고 해서 괜찮다고 했지만 기어이 먹을 것을 사 왔다. 마치 참견하지도 말고 관심 갖지 말라고 한 말에 대한 사과처럼 먹을 것을 권했다.


그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주말마다 내 길에 나오던 경이 그때부터 나오지 않았다. 토시 사건? 그건 사건도 아니다. 꽃다발과 케이크 선물에 커피쿠폰으로 답한 것? 조금 처진 답례이긴 했다. 그렇다고 발길을 딱 끊을 일이 아니다. 누군가 왜 아니마 길에 안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시간이 안 맞아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 생각하니 그전에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긴 했다.


아니마님은 관계가 끊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딱 끊어요? 아니면 여지를 남겨 놓아요?


나는 관계를 끊게 되면 다시는 안 보는데, 경님은?


단호하게 끊지는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캐묻지 않아 그냥 넘어갔는데 헤어질 결심을 그때부터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경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언니와 회사일로 다툰 적이 있다는 말 외에는 사적인 내용을 말한 적이 없다. 내가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쳐도 장단 맞춰 속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음이 통하면 쉽게 속을 털어놓는 편이라 듣는 사람은 나도 털어놔야 하나 하고 부담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점점 가까워지면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아야 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난 것이 아닐까라고 본인은 멋대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제는 잊힌 여인이지만 한때는


아니마님, 오래 길잡이 해야 돼요. 내가 은퇴하면 매일 같이 걸을 거예요. 그때까지 길잡이 놓으시면 안 돼요.


요렇게 달라붙더니 도대체 왜 내 길에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몰라, 서러운 마음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길벗이 또 있다. 이 얘기 저 얘기, 남편 얘기, 아들 얘기 하면 내가 잘 받아 주어서 친언니 같다고 팔짱 끼며 따르던 길벗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걷기 후 기록을 살펴보다가 이제까지 내 길에 참가했다가 후기에 쓴 자신의 댓글을 모조리 삭제한 것을 발견했다. 그 밑에 내가 단 댓글만 덩그마니 남아 있었다. 그럴 만한 사건이 있긴 있었다. 그날도 걷고 먹고 찍고 쓰리고 신조대로 사진을 찍는데 마침 사진을 잘 찍는 길벗이 있어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단체 사진까지는 순조로웠는데 둘씩, 셋씩 찍을 때 사달이 나고 말았다.


마스크걸 : 난 아니마님이랑 찍어야지.

진사님 : 마스크는 벗어야지요. 민폐야......


늘 검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사진 찍는 것도 싫어했지만 내가 단체사진은 의무라고 하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찍곤 했다. 그런 것은 뭐라고 하지 않기에 마스크로 가리고 사진을 찍는 길벗이 가끔 있다. 그런데 진사님은 마스크를 쓰고 찍으면 같이 찍는 사람에게 민폐라고 하는 것이다. 당사자는 기분이 나빴을 만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쌩 하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마음이 상해서 그 길로 집에 가서 자신이 단 댓글을 지극정성으로 일일이 찾아 다 삭제한 모양이다.


단둘이 셀카로 찍은 것, 룰루랄라 둘이 손 흔들며 걷는 뒷모습, 단체 사진 등 몇 장의 사진도 삭제하고 싶었겠지만 내게 지워달라고 연락하지는 않았다. 자신만의 사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지워달라고 요청했다면 나는 안 된다고 했을 터다. 이미 한 번에 올린 사진을 일일이 찾아 지우는 것은 대공사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내 길에 다시는 안 나올 생각임은 분명하다. 내가 마스크를 벗고 찍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민폐라고 한 것이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런지 몰라, 서러운 마음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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