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정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거의 매일 걷기 공지를 한다. 올해도 12월 말까지 채우면 365일 중에 355회 정도를 공지하게 된다.
가끔 쉬는 날은, 공지글에 참가 댓글이 없는 날이거나 다른 걷기 카페 가서 걸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혼자라도 간다고 호기롭게 나갔지만 같이 걷는다는 공지의 의미가 퇴색하고, 혼자 걸어도 후기는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에 그만두었다.
누구는 매일 걷는 사람은 있지만 매일 공지를 해서 같이 걷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기네스북에 등재하라고 한다. 그렇게 매일 10~15km씩 걸으면 무릎 나간다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고, 너무 빨리 간다, 사진 좀 그만 찍어라, 매식을 해서 좋다, 싫다 등등 외모만큼이나 다양하게 각양각색으로 표현을 한다. 그동안 길잡이 1주년, 2주년, 100회, 200회, 500회를 자축하고 며칠 후인 12월 말에는 같이 걸은 지 3년 반 만에 걷기 기록 10,000km 이상 달성 축하 및 송년회를 갖기로 했다.
3년여 동안 이런저런 일 다 겪으며 같이 걷다 보니 자주 나와서 특별히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도 생긴다.
경은 나보다 다섯 살 아래다. 할 말 다하면서 소신껏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하는 아니마가 매력이 있고(경의 표현으로) 길이 좋아서 주말마다 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몇 명이 친해져서 개인적으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경은 길잡이 200회 기념 때 꽃다발과 함께 케이크를 가져와서 축하의 자리를 한층 풍성하게 해 줬다.
모인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작은 기념품을 나눠준 후 자주 나와 준 세 사람을 뽑아서 조촐한 선물을 주었다. 또 셋을 추첨해서 졸저인 ‘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을 선물하였다. 전부터 내 책을 주고 싶었던 경도 책을 받은 사람 중 하나라 내심 좋았다. 집에 와서는 경에게 커피 쿠폰을 보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 후에 걷기 카페에서 월 정기 버스여행 공지가 떴다. 모르고 있었는데 경이 자기는 신청했으니 나도 신청하라고 연락을 해주었다. 동시에 신청하면 나란히 앉아 갈 수 있는데 간발의 차이로 한 사람이 사이에 끼어서 버스 앞뒤로 앉아가게 되었다.
키큰코스모스님, 혹시 자리 좀 바꿔 주실 수 있나요?
왜?
경님이랑 같이 앉아 가려고요.
앞자리라면 바꿔주겠는데 앞이 아니라서 안 되겠는데.
할 수 없이 나와 경은 앞뒤로 앉아서 갔다. 나는 옆자리님과 계속 대화를 하며 갔는데 앞자리 두 사람은 조용한 것 같았다. 도착해서 반갑게 합류했는데 경이 팔에 끼운, 햇빛을 가리기 위한 긴 토시가 마치 오페라 가수 팔처럼 예뻐서 한 마디 했다.
오페라 가수 같은데. 하하.
참견하지 말아요!
에? 관심인데......
관심도 갖지 말아요.
아, 알았어.
머쓱해져서 앞서 가는데 경이 따라온다. 걷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내 옆에서 경도 같이 했다. 잠시 후에 경 모르게 옆자리에 앉았던 키큰코스모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까 같이 무슨 재미있는 얘기 좀 하고 오셨어요?
아니, 그냥 처녀 같은데, 처녀지? 그렇게 말했더니 좀 웃고 말더라.
이런! 주책맞은 코스모스를 봤나? 아무리 경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미혼처럼 하고 다녀도 결혼 경력도 있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에게 처녀라니, 처녀라는 말은 여자에게 함부로 쓰기 거북한 말이기도 하다.
짐작컨대 그때부터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건넨 내 한 마디에 불똥이 튄 것 같았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