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이해

by Anima

길벗들과 같이 걷기 시작한 지도 햇수로는 7년이 되었다.

걷기 동호회 두어 곳을 거쳐 한 곳에 정착한 지는 삼 년에서 석 달이 모자란다.

길잡이를 한 지도 2년이 넘어 이대로 변수가 없다면 내년 여름쯤 1,000회 공지를 앞두고 있고 이미 걷기 10.000Km를 넘었다.


처음부터 같이 걸으며 이제까지 자주 얼굴을 보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아니마 길에 안 온 사람은 있지만 한 번 온 사람은 없다고 말을 할 정도로 여러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한 번 왔다가 통 볼 수 없는 사람, 잊을 만하면 오는 사람,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시간 나면 오는 사람, 손주 보느라 정해진 요일에만 나오는 사람 등등, 다 자기만의 사정으로 오랜만에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면 궁금하기도 하다.


영도 궁금한 사람 중의 하나다. 산악회 다니다가 무릎이 아파서, 뒤풀이 때 술로 끝내는 것이 싫어서 오는 4,50대 빼면 거의 직장 은퇴 후에 오는 60대가 대부분이었다. 영은 50대 초반으로 점점 둔해지는 몸에 건강관리를 위해, 체중관리를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처음 본 느낌은 다소 살집이 있는 몸매에 잘 웃으며 챙 있는 모자가 잘 어울리는 생기발랄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주 나와서 처음 본 사람과도 잘 어울렸다.


걷기 전에 먹는 일정대로 삼청동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다. 유명한 노포라 그런지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이었다. 모두 신발을 선반에 가지런히 올리고 들어갔는데 한 길벗이 늦게 들어오다가 올리지 않은 신발을 보았다.


누구야, 신발을 안 올려놓은 사람이?


아, 제 거예요. 좀 올려 주세요.


이걸 해달라고?


그쪽을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길벗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신발도 손대기 싫은데 남의 신발을 올려달라고 해? 나보다 젊은것이 싹수가 없네, 어이가 없네.’ 이런 표정이었다.

그때 영이 눈 상태가 좋지 않거니와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보다 좀 더 가벼운 내가 일어나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 내가 해주겠다고 하며 벌떡 일어났다.


자기보다 젊은것이 시켜 먹는 것도 불쾌한데 한 술 더 떠 길잡이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대신하니 더욱 기분이 나빠졌나 보다. 이미 정한 메뉴가 꼬막정식이란 것을 알고 들어 왔는데 갑자기 꼬막정식이 싫다며 그냥 나가버렸다.

그 길벗은 일이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본 사람들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뒤로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 내 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영도 나도 자신의 언행이 끼친 불상사에 난감해하다가 ‘괜찮아, 괜찮아, 저 사람이 이상한 여자야.’하는 좌중의 말에 잘 차려진 꼬막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로부터 몇 달간 영은 내 길에 자주 나와 주었다. 평지를 걷는 내 길에서는 웨딩드레스만 아니면 된다고, 편한 신발만 갖춰 신으면 된다고 하며 자유로운 복장을 권장한다. 산이 아닌 도심을 걸으면서도 습관적으로 등산복을 갖춰 입고 나오는 사람이 많지만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이 기능성 등산복 차림인 사람들 중에서 영은 리본 달린 챙 모자에 폭이 넓은 바지 등을 입곤 해서 비교적 멋스러웠다. 아무래도 꾸민 사람을 찍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 나는 기꺼이 영의 사진을 찍어주고 영도 찍히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길벗들에게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며 부추기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는 피사체가 되기를 즐긴다. 영을 먼저 찍고 나를 찍어 준다는 영에게 핸드폰을 맡겼다. 나온 사진을 보니 초점도 안 맞고 수평도 안 맞았다. 그래도 사진은 잘 나와야지 하고 다시 부탁하면서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자꾸 이래라저래라 해.


이왕 찍는 거 잘 나오면 좋잖아. 기분 나빴어요?


자꾸 찍을 때마다 그러니까요. 각자 알아서 찍어야지......


그렇구나, 알았어요. 이제 각자 알아서 찍어요.


둘 다 음성이 떨리는 것을 보니 서로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다. 길벗들과 걷고 헤어져 집에 오는데 영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사진을 찍는데 돌과 주변이 안 보이고 카메라로 보면 더 이상하게 보여서 속상했다고 한다. 요즘 눈 상태가 좋지 않고 점점 나빠지지 않도록 치료하며 예쁜 세상을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뿔싸!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영의 시력이 무척 좋지 않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아, 내가 영 님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사진에만 집중해서 그런 일이 생겼네요.

눈이 안 좋다는 것 깜빡 잊고 사진 찍을 때마다 툴툴거린 내 무심함이 정말 미안해요.


'아니마 님도 아프면 꼭 병원 다니고 또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길에서 만나자'는 영, 그때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으니 조만간 나와서 같이 걷기를 바란다.

사진 찍으며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고 먹고 찍기를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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