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긴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설레는 것은 막을 수가 없고 참아서도 안 된다.
마음이 가는데 어쩌란 말이냐.
외모보다 마음이고 겉보다 안이라고 하지만 같이 살 것도 아닌데 속 보고 안 보고 할 필요도 없다.
모여서 걷고 먹고 찍고 몇 번 하다 헤어지면 내일 다시 보든지 몇 달 뒤에 만나든지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런데 외모가 호감형인데 대화가 편하고 성격까지 좋다면 오래 남는다.
자기소개를 하고 걷는데 보통 남자들은 맨 뒤에 말없이 따라온다.
그도 그렇게 뒤에서 따라 걸었다.
요즘의 나는 길잡이를 하기 때문에 앞서서 가지만 초기에 다른 사람을 따라갈 때는 항상 후미를 지켰다.
그래서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하고 나란히 걷게 되었다.
적당한 키에 긴소매를 걷어 부친 팔뚝이 단단해 보이는 날렵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남자도 묶을 수 있을 만큼 긴 머리 아니면 아주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그도 스포츠형 짧은 머리형에 얼굴도 나이보다 5,6년은 젊어 보였다.
서로 뜨뜻미지근한 대화를 하다가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 반색을 하며 그야말로 수다를 떨며 걸었다.
그때 길잡이는 원숙한 나이지만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걸으면 걸음걸이가 좀 늦어져서 뒤로 처지기 마련이다.
남의 길에 와서 두 남녀가 뒤쳐져서 얘기하며 걷는 게 눈에 거슬렸나 보다.
길잡이가 뭐라고 웅얼거렸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처음 본 사람끼리 뒤에서 조용히 걸을 것이지
무슨 할 말이 저리 많냐는 내용으로 짐작한다.
사실 길벗들에게는 거슬릴만한 행동이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계속 말하며 일행을 뒤따라 걸었다.
무더위에 잠깐 의자에 쉬고 있는데 그가 벌떡 일어났다.
편의점으로 가더니 시원한 음료수를 인원수대로 사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제 그는 나뿐만이 아니라 길벗들에게 호감형 인간이 되었다.
길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언제 또 길에 나올 수 있느냐고 물으니
당분간 일주일에 두 번은 지방에 가야 하기 때문에 언제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문예지에 글도 쓰고 단편소설집도 출간했다고 하자 자기 동생이 영화감독이며 소설가라는 말을 했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 시나리오를 쓰고 결국 영화감독이 돼서 흥행에 성공한 유명 감독이었다.
인터넷으로 동생이 출간한 소설 4권을 샀다.
세 권을 단숨에 읽고 다른 책들과 단체에 기부를 했다.
한 권은 완독 할 날을 기다리며 아직도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그 이후 한 번 더 다른 길잡이의 남산길에 동행했을 때 뒤늦게 댓글을 달고 나타났다.
좌중이 훤히 보는데도 반가워서
‘나 따라왔구나!’하고 말하는 이 여자가 이상해 보였으리라.
또 나란히 걷다가 나도 모르게 대열에서 처졌다는 느낌에 앞서가면 같이 가자고
내 백팩 끈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칠 때는 기분이 좋았다. 걷다가 이런 기분 처음이야!
그리고 헤어져 오는데 그가 말했다.
아니마님이 길잡이 해요. 그러면 내가 자주 나올게요.
일주일에 두 번 지방에 가는 날 빼고 매일 걸으러 나올게요.
에이, 나 같은 길치에 방향치가 어떻게 길잡이를 해요.
서울 와서 시간 있을 때 같이 걸어요.
오늘도 참 재미있게 걸었어요. 다음에 또 봐요.
그 이후 그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두 번 만에 사라져서 아쉬움이 더 남나 보다.
왜 나오지 않니?
내가 길잡이가 되었는데 왜 나오지를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