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가 되고 남이 이끄는 길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내 길을 매일 열다 보니 갈 시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가고 싶은 길도 아니기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길잡이 길에 굳이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 길에 운영자이면서 길잡이인 길벗이 왔다.
연배가 어느 정도 있지만 열정이 있어 이 길 저 길 자주 참가하는 길벗이다.
전에도 몇 번 와서 이 참견 저 참견, 이래라저래라 주문을 많이 해서 반갑지 않은 사람이다.
운영자건 길잡이건 남이 이끄는 길에 와서는
아는 길이라도 리더 본능을 숨기고
조용히 따라오는 것이 불문율이건만
이 길잡이는 내 앞을 지나쳐 팔을 휘두르며
앞으로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간다.
그 뒤를 따라 두어 명이 같이 나아가니 뒤를 따르는 나는 길잡이인지 허수아비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다.
오지라퍼님, 뒤로 오세요. 길잡이 앞에 가지 않는다는 것 아시잖아요.
처음 온 사람들도 그래도 되나 보다 하고 앞서 가니까요.
응? 내가 운영자이고 길잡이라 앞서 가는데
뭐? 안 되나?
그러시면 안 되지요. 본보기가 안 되잖아요.
그래? 그럼 속으로는 내가 자기 길에 오는 것 싫어하겠네?
네, 속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싫은데요.
그래? 알았어.
목적지에 도착해서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 오지라퍼님은 한동안 내 길에 나오지 않았다.
눈에 안 보이니 편했는데 석 달 후에 다시 그녀가 나타났다.
옛일은 잊어 주세요, 반갑게 인사하고 걷는데 또 그때처럼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노래하듯이 나아간다.
이 사람 안 되겠네, 한동안 안 나와서 신경 끄고 살았는데 다시 와서 석 달 전 일을 상기시키네.
잠수교를 건너기 전에 일행들을 벤치에 앉아 쉬게 한 후에 백팩을 탁 내려놓으며 오지라퍼에게 다가갔다.
오지라퍼님, 얘기 좀 해요.
일행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시선을 거두는 척 하지만 다들 보고 있는 눈치였다.
전에도 앞서 가시다가 그러지 말라는 제 말에
기분 상하셨잖아요.
오랜만에 나오셔서 똑같은 행동을 하시니
무슨 생각으로 나오시는 거죠?
제 길에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것도 싫고
오늘 같은 행동도 싫어요.
운영자고 길잡이신데 아실 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세상에! 내가 12년 걷기 생활에 이렇게
나를 모욕한 사람 처음이야!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망신, 굴욕은 처음이야.
아하, 앞으로 이 일이 사람들 입에 어떻게 오르내릴지......
아, 흑...... 나 갈래.
그녀가 울먹이며 잠수교를 넘어가기 직전에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불렀다.
오지라퍼님, 죄송해요. 제가 잠시 흥분했나 봐요.
간식이나 드시고 가세요.
이미 마음이 상한 오지라퍼는 그대로 가버리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착찹쩝쩝 간식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