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특기생으로 시작된 외길

by 보하루

우리나라의 입시 전형은 다양하다. 내가 입학을 지원하던 해 2013년에는 ‘한자 특기생’이라는 제도가 존재했다(아마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안다). 1급에서 사범 급수까지 고득점을 받은 한자 자격증이 있으면 국어국문학과, 중어중문학과, 한문학과와 같은 전공에 입학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이다. 나는 이 전형으로 수도권 한 대학의 한국어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 특별 전형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철저하게 엄마 덕이었다. 당시 디자이너를 꿈꾸며 학교 공부에 거의 손 놓고 있던 내가 어느 시점에 미술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한 살 차이 나는 고3 언니가 여러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다시 연필을 잡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놓고 있던 공부가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의욕에 따라주지 않는 두뇌에 절망하고 있던 찰나, 한자 학습지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한자 자격증이라도 준비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학교 공부에서 딱히 방도를 못 찾던 내가 이건 왠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준비하기 시작했고, 2급에서 시작해 최고 급수인 사범까지 따게 되었다. 사범 시험을 보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온 가족이 함께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서 서울의 한 여자중학교로 갔고, 부지런한 엄마 성격덕에 일찍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서 시험 시간 때까지 기다렸다. 시험 시간이 되자 한껏 긴장한 채로 고사장에 들어섰는데 대부분 백발의 어르신들로 가득했고 내 또래나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하다. 한자 급수 자격증이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나 취미로 공부하시는 어르신이 아니라면 어디에 쓰이겠나? 취업에 필요한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자격증은 그저 대학 입학을 위한 ‘매직패스권’ 같은 것이었다.


그때 당시 공부하던 자료들…ㅋㅋ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렇게 대학 입학을 위해 한자와 한문을 공부했던 것이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다. 살다가 한 번쯤 방황할 때면 그때 한 가지 목표를 맹목적으로 좇았던 것과 한자라는 무기가 있다는 것이 내 안의 자부심이 되어 나를 일으켜줬다.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언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했다. 혹시 모른다. 나처럼 언어 공부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되는 사람이 또 있을지. 앞으로의 일상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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