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공부하는 마음가짐

by 보하루

내가 대학생이던 약 10년 전쯤에는 중국어가 말 그대로 ‘붐’이었다. 중국 경제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었고, ‘유커(遊客)’라고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 각종 기업에서는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각 분야의 취업 시장에서 ‘중국어 가능자’가 우대되었다. 문과생이던 나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자를 조금 알고 있어서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채로 시작할 수 있었다.


중국어와의 첫 만남은 어느 중국인 방송인이 강사로 일한다고 해서 유명해진 강남의 P어학원이었다. 한자를 알고 있음에도 중국어의 간체자와 발음 그리고 성조까지 모든 게 낯설게 다가왔다. 소리가 재미있기도 하고, 내가 외국어로 말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꽤 빠져들어서 선생님을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두세 달 정도 공부해서 기초를 떼고 나니, 할 수 있는 말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글자만 보고 새 언어를 읽을 수 있게 되고 한자를 유추하여 의미를 해석해보기도 하면서 나는 중국어 공부에 푹 매료되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중국어를 할 때의 나는 새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중국어를 하는 순간만큼의 나는 ‘베이징에 사는 유쾌하고 호탕한 아저씨’라고 상상했다. 모든 결정의 순간에 ‘하오(好)~ 하오(好)~’를 남발하며 모든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아저씨 말이다. 이 아저씨의 자아를 장착하고 중국어를 하기 시작하면, 1) 나는 중국인이고 2) 나이가 많고 3) 세상 무서울 게 없는 60대 아저씨란 생각에 중국어로 아무 말 잔치를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한낱 작게 느껴졌던 취준생이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이야기하고 온 날이면 집에 가서도 연신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그 아저씨로 사는 것이 꽤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중국어 선생님은 분명 가녀린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나 혼자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대충 이런 느낌...


어쨌거나 ‘은퇴한 무직 65세, 아침마다 공원에서 태극권을 즐겨하는 그 상상 속 아저씨가 어딘가 존재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나는 중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중국 뉴스를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와 사람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짧게 말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점차 표의문자의 특성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이런 상황에는 왜 이런 대답을 할까?’라는 고민이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이끌었다. 그러면서 점차 중국어라는 언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외국어 학습은 목표 언어권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는지, 어떤 모양새로 생활하는지 파악해서 외국어를 하는 순간만큼은 다른 국적의 자아로 치환되어 행동해야 한다. 고향의 나는 집에 두고 온 채로.


간혹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을 볼 때면 교사로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가 없는데 언어만 배운다는 건 절대 불가한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뉴욕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대학생, 오사카에서 시나몬 롤을 만드는 카페 사장님, 서울에서 곧 데뷔를 앞둔 K-pop 아이돌 연습생 등 나만의 부캐를 만들어서 연습해 보는 건 어떨까?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형태이든지 간에 나만의 재미있는 요소를 발굴하시길. 결국은 그 나라에 대한 흥미가 외국어 공부의 지름길이랍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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