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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만드는 희희 Sep 28. 2020

인터넷서점님, 오늘 제 운세는 어떤가요?

인터넷서점 판매지수


새 책이 나오고 한동안은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겪는 증상이 있다. 휴대폰 기상 알람을 끄고는 인터넷서점 앱을 열어 신간의 판매지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인터넷서점에는 ‘판매지수(세일즈포인트)’라는 것이 있다. 이름 그대로 책이 얼마나 판매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수다.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 개봉영화의 좌석점유율과도 같은 건데 그 결과에 따라 관계자들이 일희일비한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일십백천만십만... 쿠아! 이 정도의 판매지수는 저세상 스케일입니다.



판매지수는 서점마다 고유한 알고리즘으로 계산된다고 한다. 출간 초기에는 한 권당 일정 숫자대로 증가해서 판매부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잠깐이다. 판매추이까지 반영되는 터라 만일 어제 30부, 오늘 20부가 팔렸다면 판매지수는 쌓이지 않고 떨어진다. 판매부수에 추이, 그 밖에도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하니 결국 판매지수만으로는 판매부수를 알 수 없다는 게 결론이다.(물론 출판사마다 관리자 아이디가 있어 인터넷서점에서 판매된 정확한 부수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출근 전에 판매지수를 확인하고는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서점마다 정확한 판매부수를 볼 수 있는 SCM 서비스가 있습니다



판매지수의 존재를 알고부터 아침마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저자들도 많다. 농담으로 ‘판매지수 중독’에 걸렸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떠도는 괴담도 들었다. 한 유명 저자가 아침마다 판매지수를 확인하고는 조금이라도 떨어졌다 하면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질책하고 추궁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나도 이른 아침 저자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편집자님, 보셨어요?! 오늘 판매지수가 1천이 넘었어요! 설마 천 부 넘게 팔린 거예요?!" 기대에 부푼 상대를 시무룩하게 만드는 데에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출간 전 저자들에게 미리 말하곤 한다. 판매지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그러고 정작 나는 매일 새벽 패를 떠보며 하루 운세를 점치듯 판매지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에 연연하는 나 자신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은데도 말이다.

요즘 확인 중인 책은<힘든 하루였으니까, 이완연습>(홍보입니다)


책 만드는 선배들과 밤새 시끌벅적 놀았던 날. 해 뜰 무렵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어느 순간 한 선배가 조용히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다. “선배 뭐해?!” 액정을 들여다보니 인터넷서점 창이다. 혹시, 설마, 판매지수?! 선배도 아침마다 보고 있었다니. 그 순간 느낀 건, 묘하게도 해방감이었다.


그 후로 판매지수에서 해방되었는가, 하면 아니다. 다만 이전보다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여전히 아침마다 패를 떠본다. 일희일비하면 어떤가. 그게 책 만드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인 것을.




(사진제공. H-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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