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럼 나보다 영숙이가 좋아?”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자 엄마가 영숙이를 괴롭히지 말라며 나를 혼냈다. 나는 그 애를 괴롭히지 않았으며, 그 애는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엄마에게 화를 냈지만, 엄마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누가 너를 영숙이처럼 무시하면 좋겠어?”
엄마의 말을 듣자 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가 연필로 책상을 내려찍었다. 뾰족한 연필 끝이 부러지며 책상에 상처가 났다. 엄마가 그걸 보곤 정말로 화를 냈다.
“너 엄마 죽으라고 책상에 그런 거지.”
엄마가 구둣주걱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엄마가 손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형아 왜 그래.”
동생이 문지방에 서서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저리 꺼져.”
내가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자 엄마가 구둣주걱을 들어 바닥을 쳤다.
“엄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울면서 방을 나갔다. 엄마가 쫓아와 팔을 붙들었지만 강하게 뿌리쳤다.
“엄만 동생이랑 살아.”
내복 바람으로 쓰레빠를 끌고 급하게 현관문을 나섰다. 바람이 차 멀리 갈 수 없었다. 집 뒤로 가 무릎을 안고 처마 아래 쭈그리고 앉았다. 새들이 버리고 간 둥지가 머리 위에 걸려있었다. 잠시 후 동생이 나와 옆에 앉았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울음이 그치고 둥지를 가만히 올려 보다 동생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은 얼굴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교실 뒤에서 누나들이 거울을 보고 있었다. 형들 몇은 밖에 나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왔다. 나는 엄마가 아침에 새 옷을 입혀줬다.
선생님이 책상 앞을 지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쳐다봤다. 형들과 누나들한테 손가락을 내밀어 보라고 시켰다.
“너 손톱 깎고 와.”
선생님이 형의 손가락을 지휘봉으로 치며 말했다. 주위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 이, 해 봐.”
선생님이 나를 지나쳐 영숙이의 앞에 서더니 말했다. 영숙이가 책상에 앉아 입을 벌렸다.
“넌 앞으로 나와.”
선생님이 가볍게 지휘봉으로 영숙이의 책상을 치며 말했다. 영숙이가 교탁 앞으로 가 섰다. 선생님이 영숙이의 드레스와 머리통을 지휘봉으로 휘적거리며 말했다.
“넌 지금 집에 가서 씻고 와.”
양옆에서 형과 누나들이 웃었다. 나도 선생님이 영숙이를 세게 혼내주길 상상하며 그걸 지켜봤다.
“너 머리 감은 지 얼마나 됐어?”
영숙이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영숙이 얼굴 아래로 흘렀다.
“머리 감은 지 얼마나 됐냐니깐.”
선생님이 영숙이의 가슴을 찌르며 물었다. 영숙이가 뒤로 밀려났다.
“너 뒤로 돌아봐.”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드레스의 목 뒤를 들췄다. 목 뒤가 새카맸다.
“얼른 집에 가.”
선생님이 소리를 질렀지만, 영숙이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지휘봉으로 영숙이의 옆통수를 세게 쳤다. 영숙이가 손으로 귀를 감쌌다. 하지만 영숙이는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너 왜 안 가. 얼른 가!”
선생님이 지휘봉 끝으로 계속 영숙이를 찔렀다. 영숙이는 울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칼에 찔릴 뿐이었다. 키득이던 소리가 금세 잦아들었다.
“선생님. 영숙이 집에 아빠 있어요.”
누가 손을 들고 말했다.
“영숙이 지금 집에 가면 아빠한테 맞아요.”
누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흔들려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선생님이 영숙이를 봤다.
“내일까지 깨끗하게 씻고 와.”
영숙이는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선생님이 다른 형과 누나들을 검사하는 동안 영숙이는 엎드려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교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영숙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얗게 때가 낀 영숙이의 팔꿈치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영숙이를 깨우지 않으셨다.
다음 날, 영숙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형과 누나들에게 묻자 누군가, 아침에 운동장 근처에서 영숙이를 봤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왜 영숙이를 데려오지 않았냐고 그 사람을 탓한 후, 수업을 중단하고 모두 밖에 나가 영숙이를 찾으라고 했다. 몇몇 형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에 신나 했다.
두 시간 넘게 영숙이 찾기가 계속되자 누나 몇이 손이 어는 것 같다며 교실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운동장 끝과 창고 뒤, 화장실, 수돗가를 모두 헤매어도 영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도망간 게 분명하다고 형 몇이 말했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갔을까. 여기는 언 밭뿐인데. 나는 언덕 위의 버스 정류장을 봤다. 가느다란 표지판이 멀리 보였다.
그때 멀리서 영숙이를 찾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하나가 운동장 정문으로 영숙이의 팔을 끌고 들어오고 있었다. 형 말에 따르면 영숙이는 학교 뒤쪽 배추밭의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형은 영숙이가 드레스 치맛자락에 무릎을 넣고 손에 입김을 불고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끌려오는 영숙이의 손등이 터 있었다. 모두 영숙이를 쳐다보는 데 그 애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히죽히죽 웃으며 오빠 손에 끌려왔다. 선생님은 그날도 영숙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날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가 내일 영숙이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날뛰었다.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엄마가 나를 꼬드겼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 앞에 엄마가 동생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나는 엄마랑 영숙이와 멀리 떨어져 걸었다. 동생은 엄마 손을 잡고 영숙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영숙이는 말없이 엄마의 옆을 걸었다.
나는 영숙이가 목욕하는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가지 않았다. 나는 영숙이가 집에 와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나는 영숙이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