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by 빈자루

학교가 끝나면 동생과 놀았다. 학교 형, 누나들을 찾아 긴 두렁을 따라가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동생이랑 빈 운동장을 기웃대며 기린이나 사자 같은 청동 동상의 목을 잡고 늘어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운동장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가끔 아빠가 읍내에 나갔다가 비디오를 빌려 왔다. 그럼 동생과 넋이 나가 그걸 계속 돌려봤다. 홍콩할매 귀신이나 돌아온 우뢰메 놀이를 친구들과 하고 싶었지만, 그런대로 동생과 둘이 할 만도 했다.

“형. 이것 봐.”

어느 날 동생이 집 뒤에서 나를 불렀다.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분홍 새가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처마 밑에서 새끼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눈도 뜨지 못하고 털이 몸을 하나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퉁퉁 부은 눈이 살짝 열려있는 것도 같았다.

“죽었나 봐.”

동생이 막대로 새를 툭 건드렸다. 대가리가 몸통만 한 그것이 날개를 비틀며 턱을 살짝 올렸다. 뱃가죽이 심하게 들쑥날쑥했다.

“엄마 불러올게.”

엄마를 데려오는 길에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새에게 뿌려주었다. 엄마가 새를 조심스럽게 쥐어 둥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좁은 둥지 속이 더욱 요란해졌다.

“어미 새가 좋아할 거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 엄마 새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 새는 보이지 않았다. 둥지 속의 소란스러움이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나는 동생과 함께 어미 새를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따금 문을 열고 나가 둥지를 살폈지만 끝내 어미 새는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지붕 아래에 새끼 새가 다시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더는 몸을 떨지 않았다. 나는 막대로 땅을 파고 새를 구덩이에 밀어주었다. 엄마는 사람의 냄새가 나서 어미 새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비누로 손을 씻었다. 뿌연 거품이 세면대 구멍으로 흘러내려갔다.

여름에는 동생과 계곡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맑은 계곡물엔 갈색과 짙은 녹색 자갈들이 길게 깔려있었고 나무 그늘 바깥으로 검정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녔다. 맨발을 물에 담그고 바위를 들썩거렸지만,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흙탕물이 잠시 올라왔다가 천천히 물아래로 가라앉았다.

동생이 손을 내밀며 붉은 가재의 등을 보여줬다. 가재가 꼬물거리며 동생의 손바닥 위에서 기어 다녔다. 나는 징그러워 만지지도 못하는데 동생은 계곡을 싸다니는 내내 손에서 가재를 놓지 않았다. 집으로 가기 전 동생이 가재를 바위틈에 내려주었다.

가을에는 운동장과 길가에 코스모스가 잔뜩 피었다. 나무 막대기를 휘둘러 코스모스 대가리를 따다 보면 꽃잎에 앉았던 잠자리가 하늘로 날랐다. 휙휙. 나무를 휘두르다 막대 끝에 잠자리가 맞아떨어졌다. 잠자리의 몸통이 대가리에서 떨어진 채 날개를 파닥거렸다. 나는 놀라 막대를 얼른 버렸다. 그 후론 잠자리가 있는 곳에서 막대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학교에 있으면 동생이 놀러 오기도 했다. 창밖으로 비눗방울이 뭉게뭉게 올라가면 누나들이 환호를 질렀다. 동생이 비눗방울을 불며 화단 아래를 지나갔다. 나는 선생님이 동생을 불러 혼을 낼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에 누나들이 동생을 교실로 불러 야단을 피웠다.

“얘 하얀 것 좀 봐. 되게 귀여워.”

“형아.”

동생이 누나들을 뿌리치고 내 곁으로 왔다. 나는 동생이 귀여웠다.

가끔 엄마와 아빠는 깊은 밤에 나와 동생을 놔두고 교회에 간다거나 이웃집에 팥죽을 얻어먹으러 갔다. 산속의 밤은 무척이나 깜깜하고 조용했는데, 나는 그러면 이때다 싶어 동생을 방에 가두고 불을 끈 다음, 잘못한 것을 말할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동생에게 명령했다. 그리곤 혼자 거실에 나와 불을 환하게 켜 놓았다.

동생이 딱히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왜인지 동생이 울며 나에게 빌길 바랐다. 그러면 내가 형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불 꺼진 방에서 동생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나 혼자 시커먼 창밖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내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면 동생이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깨워 거실로 나온 뒤 엄마와 아빠가 오길 기다렸다. 동생이 있으니 더는 무섭지가 않았다.

까만 하늘에 박힌 별들을 보며 동생에게 책에서 주워 들었던 영웅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의 끝에 영웅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고, 나는 손끝으로 하늘 어디쯤인가를 이으며 그래서 저게 사냥꾼 자리, 쌍둥이자리라고 말을 지어냈다. 그러면 동생은 정말 그게 사냥꾼 모양이고 쌍둥이 모양인 걸 알겠다는 듯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 보았다.

어떤 날은 자고 일어나면 눈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그럼 나와 동생은 밖으로 달려 나가 눈 속을 헤집었다. 우리는 같이 눈에 굴을 팠다. 지붕에 눈을 던져 동그랗게 쌓인 눈을 아래로 후루룩 떨어뜨렸다. 동생은 그 아래 서 있다가 눈을 맞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처마에서 제일 긴 고드름을 따 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 동생은 내가 따준 고드름을 장갑이 젖을 때까지 들고 다녔다.

학교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선생님은 영숙이가 할 때까지 나보고 했던 걸 다시 하거나 기다리라고만 얘기했다. 나는 매일 영숙이를 기다리느라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

“너는 왜 아무것도 몰라?”

어느 날 내가 영숙이에게 물었다. 영숙이는 옆자리에서 찌그러진 필통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깎은 연필 대가리는 모두 심이 부러져 있었다. 영숙이가 하얀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보았다.

“뭘? 내가 뭘 몰라?”

영숙이가 빠르게 말했다.

“맨날 못해서 맞잖아. 책도 없는 게.”

“아 몰라 몰라. 말 시키지 마.”

“너 바보야?”

영숙이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왜 바보야? 니가 바보지.”

“너가 바보야. 이 똥개.”

형과 누나들이 끼어들었다.

“너네 왜 싸워. 싸우지 마.”

“얘 글씨도 못 읽는단 말이에요.”

내가 고자질하듯 말했다.

누나가 영숙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진짜 글씨 못 읽어?”

영숙이가 나를 흘겨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도 더러워.”

내가 연달아 말했다.

누나가 가만히 영숙이를 보다가 나에게 말했다.

“얘 원래 그래. 그러니까 싸우지 마.”

영숙이는 그날도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앞으로 나가 종아리를 맞았고 나는 팔로 책을 가렸다. 영숙이의 종아리에 붉은 줄이 새겨졌다. 자리로 돌아온 영숙이는 고개를 가슴에 파묻고 잠시 들썩거렸다. 우는가 싶더니 금세 아무 일도 아닌 듯 일어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올렸다. 영숙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엉뚱한 책을 펴고 낙서를 했다. 나는 가린 어깨를 더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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