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

2화

by 빈자루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겨울, 우리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아빠가 부대를 옮긴 거라고 했다. 트럭을 타고 한참 달려간 곳엔 빈 운동장과 1층짜리 하얀색 학교가 전부였다. 학교 뒤로 빨간 지붕 집 하나가, 그 옆으로 검정 비닐이 펄럭였고, 넓은 밭에는 누런 배추가 버려져 있었다. 그 외엔 전부 산이었다. 동생은 자길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냐며 울었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누군가에게 쫓겨 가방을 메고 배추밭을 뛰어다녔다. 배추밭은 넓고 딱딱했다. 부엌에서 앞집 살던 누나를 만났다. 우리는 반가워하며 함께 도망을 다녔다.

“예습이 뭐예요?”

입학식 전날 아빠가 나를 불러 앉혔다. 이제부터 진짜 학생이니 학교에 가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예습은 다음 날 배울 것을 미리 공부하는 것이라고 아빠가 말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뭘 배울지 어떻게 안담. 나는 초등학생이라는 부담감을 느끼며 책상에 앉았다. 유치원에서 배운 이름 쓰기를 새로 산 공책에 또박또박하다 팔에 힘이 빠졌다. 걱정 없이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동생을 보니 어쩐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동생이 덮고 있는 이불속을 쑤시고 들어가 옆에 누웠다.

다음 날 질퍽하게 눈 녹은 운동장엔, 옷이 얼룩덜룩한 형 몇과 누나들이 삐뚤빼뚤 줄을 서 있었다. 다 해봐야 유치원 한 반의 숫자도 안돼 보였다. 어른이라고는 선생님 둘과 뒤 편에 서 있는 엄마가 전부였다.

형들이 나에게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애 뒤에 가서 서라고 했다. 나는 진흙에 발이 빠지지 않게 녹지 않은 땅을 골라 그 뒤로 가서 섰다. 형들이 낄낄거리며 쟤 둘이 친구라고 했다. 분홍색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애는 새카만 종아리를 내놓고 바들바들 떨고 서 있었다. 나는 손이 시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교실로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이 짧고 뭉툭한 몸통 옆구리에, 끝에 까맣게 때가 낀 지휘봉을 껴고 단상 위에 올라섰다.

-임하영

선생님이 칠판에 이름을 적더니 지휘봉으로 칠판을 쳤다. 분필 가루가 날리고 칠판 지우개가 밑으로 떨어진 후 바닥에 굴렀다. 선생님이 1학년과 3학년, 5학년을 가르칠 거라고 했다. 1학년은 분홍 드레스와 나, 둘이었다. 분홍 드레스의 이름은 박영숙이었다. 영숙이가 뒤통수를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영숙이 바보예요. 옆줄에서 형 하나가 외치자 주위에서 킥킥거렸다. 영숙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그 형을 봤다. 선생님이 형을 불러 지휘봉으로 엉덩이를 쳤다. 형과 누나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계속했다.

다음 시간에는 이름 쓰기를 했다. 선생님이 칠판을 크게 셋으로 나누더니 나와 영숙이에게 공책에 이름을 쓰라고 했다. 선생님이 형과 누나들을 가르치는 동안 나는 팔이 빠져라, 네모 칸 안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서 와서 봐주길 기다렸다.

마침내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내 공책을 한번 보더니 바로 영숙이 앞으로 가 소리를 질렀다.

“니 이름을 쓰라고. 이름을!”

선생님이 지휘봉으로 영숙이의 공책을 탁 내리쳤다. 나는 놀라서 허리가 꼿꼿이 세워졌다. 영숙이의 공책은 하얗게 비어있었다. 선생님이 영숙이에게 이름을 쓰라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영숙이는 연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끝을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계속해서 소리쳤다.

-ㅈ l ㄹ

뭐야 이게. 나는 영숙이가 왜 이름을 못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치원에서 안 배웠나.

선생님이 칠판에 영숙이의 이름을 크게 쓰더니 지휘봉으로 그 밑을 세게 치고 영숙이에게 읽어보라고 시켰다.

“박... 영... 숙...”

선생님이 일어서서 똑바로 읽으라고 크게 말했다. 영숙이가 몸을 꼬며 작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왜 크게 말을 안 해? 옆에서 나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자. 그렇게 똑바로 백번 읽고 앉아.”

영숙이가 대답하지 않자 옆줄의 형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영숙이 백까지 못 세요.”

내일까지 영숙이한테 백까지 가르쳐서 오라고 선생님이 형한테 말했다. 그리곤 영숙이에게 선생님이 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 서서 이름을 읽으라고 시켰다.

“선생님. 저는요?”

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이 내 공책을 보더니 계속 쓰라고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공책을 벅벅 눌러 이름을 썼다. 옆자리에선 영숙이가 계속 박영숙을 읽었다. 목소리가 작아질 때마다 선생님이 “크게”라고 소리를 질렀다.

영숙이는 매번 책을 안 가져왔다. 커다란 가방에 무언가 잔뜩 들어있었는데 정작 그날 책은 안 가져왔다. 나는 번번이 영숙이와 책을 나누어 봐야 했다.

영숙이는 항상 분홍색 드레스를 입었다. 목 뒤가 까맣고 까슬까슬한 치마에선 이상한 냄새가 났다. 나는 내 팔에 영숙이 팔이 닿을까 봐 질겁을 했다. 나는 영숙이가 싫었다.

그런데도 형과 누나들은 나보다 영숙이를 좋아했다. 학교에선 우리 집만 다른 집들과 동떨어져 있었다. 영숙이와 형, 누나들은 학교가 끝나면 모두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몰려나갔다. 나는 혼자 건물 뒤편의 쪽문을 밀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 하나 해.”

연필이 없다기에 내민 필통에서 영숙이는 머뭇거리더니 하필 제일 길고, 날카로운 것을 골라 갔다. 글씨도 못 읽고 더러운 게… 이번에는 지우개를 빌려줬더니 끝을 조그맣게 잘라 연필 깎는 칼로 지우개를 토막 냈다. 곧이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박영숙 일어서.”

영숙이가 머리를 긁으며 일어섰다.

“크게 소리 내서 읽어 봐.”

선생님이 칠판에 ‘내 이름은 박영숙입니다.’를 적고 지휘봉을 그 밑을 세게 쳤다. 나는 작게 내 이름은 박영숙입니다, 를 빠르게 세 번 읽었다.

“나…는…”

“소리 나게.”

영숙이가 까슬한 손으로 눈을 한참 비볐다.

“나는, 박영숙…”

“이게 뭐야?”

선생님이 ‘내’라고 적힌 글자를 가리켰다.

“나… 요.”

“이거는?”

그 뒷글자를 가리켰다.

“는…”

“이거 몇 글자야?”

영숙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이거 몇 글자냐고!”

선생님이 지휘봉으로 칠판에 적힌 글자 아래를 세게 두들겼다. 지우개가 떨어지며 거꾸로 폭 뒤집혔다.

“...네 개요...”

영숙이가 까만 손가락을 구부리며 말했다.

“나는, 은?”

영숙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너 손가락 펴 봐.”

선생님이 지휘봉으로 영숙이의 손등을 쿡쿡 찔렀다. 손등에 때가 하얬다.

“숫자 세.”

더듬더듬 영숙이가 손가락을 짚었다. 느릿느릿, 천천히 손가락 두 개를 구부리고, 두 개요,라고 답했다.

“이건 몇 개야?”

네 개라고 영숙이가 답했다.

“앞으로 나와.”

기름 바른 머리카락을 선생님이 분필 묻은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하얀 가루가 선생님 검은 머리에 묻었다.

“아.”

손등을 대라고 했다. 영숙이가 한 대 맞더니 손가락을 감싸 쥐고 허리를 수그렸다.

“이리 대.”

“아. 아. 아. 아.”

영숙이가 손가락을 흔들며 폴짝폴짝 뛰었다. 깡충거리는 영숙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바보 같으니라고. 나 같으면 창피해서 학교도 못 나온다.

영숙이는 자리로 돌아와 고개를 책상에 푹 파묻고 잠시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금방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자 쓸데없는 책들을 전부 책상에 꺼내며 다음 시간은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

“어머. 큰일 났네.”

여기에 책이 없다고 내가 대답하자 영숙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영숙이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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