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 세계는 완벽에 가까운 공이었다. 나는 그 공 속에 몸을 말은 채 깜빡. 세계를 끄고 켜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럴 수 있었다. 내가 그것을 원하기만 한다면. 내가 곧 세계이므로. 세계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세상으로 나온 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붉은 공 속에 누워 영원히 세계를 매만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 불현듯 물이 쓸려나갔다. 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세계의 완벽함은 깨졌다.
포대에 쌓여 나는 세계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이 방, 이 이불, 이 담요. 세계는 이전보다 넓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완벽한 공이 떠오르면 울음을 터뜨렸고 그때마다 엄마의 세계가 나의 세계를 끌어당겼다. 세계는 다시 완벽에 가까워졌다.
“사랑하니까 낳았어.”
엄마는 내게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사랑한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안다는 거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의 세계는 나의 세계를 몰랐다. 따라서 엄마의 세계는 나의 세계를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면 적어도 그 둘이 겹치고 난 이후부터다.
“아기는 언제 나오나요?”
처음 엄마의 배가 커다랗게 부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이 아주 천천히 자라는 풍선이라 생각했다. 그 안에 세계의 빈 곳을 채워줄 장난감이나, 아이스크림. 뭐,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났다. 나의 세계는 깨져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새로 난입한 세계를 열렬히 반대하거나 없애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평화를 사랑했고 공존을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세계엔 관심조차 없었다. 단지 나의 포대와 담요를 빼앗았을 뿐이다. 그것들이 마치 원래 자기의 것이었던 냥. 그것은 자고. 또 자고. 그리고 또 잤다. 살며시 만질라치면 대포 소리를 내며 울었다. 엄마는 녀석을 안았다. 나는 엄마를 잃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것이 인간의 형태를 갖춰갈 무렵, 친척 어른 중의 하나가 내게 물었다.
엄마요, 아니, 아빠요. 아니, 엄마요.
콧잔등의 미열을 숨기고 내가 간신히 답을 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다시 묻는 말에 녀석은 아주 쉽게, 척척 잘도 거짓말을 내놓았다.
엄마 좋아. 아빠 좋아.
새하얗고 부드러웠다. 깃털 같은 거짓말에 어른들은 깔깔거렸다. 녀석의 말간 낯을 보고 있자니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얼굴을 벅벅 씻었다. 죽 찢어진 눈꼬리에 말린 고추 색깔 얼굴이 거울에 어른거렸다. 나는 화장실을 나가기가 싫었다.
놈은 틈만 나면 달려왔다. 달려와선 내가 간신히 쌓은 기사의 성을 무너뜨리고 퍼즐 판을 뒤엎었다. 그리곤 허물어진 블록 하나를 다른 하나 위에 얹곤 좋다고 손뼉을 쳤다. 나는 녀석의 뒤통수에 주먹을 갖다 꽂았다. 엄마는 내가 만든 기사의 성보다 동생이 만든 2단 블록이 더 멋지다고 했다. 나는 동생이 미웠다.
밖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해가 뜨면 집을 나갔다가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주로 앞집 누나와 소꿉놀이를 했다. 보통 누나가 엄마 역할을 맡고 내가 아기 역할을 맡았다. 누나의 여동생이 아빠나 옆집 아줌마를 했는데, 여동생은 나보다 한 살이 적었다. 놀이는 대게 누나와 여동생이 싸우면서 끝이 났는데, 서로 엄마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다툼의 이유였다. 누나와 여동생이 돌아간 후에도 나는 한참 놀이터를 돌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선 동생이 다시 나를 따라붙었다. 나는 동생을 피해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나를 불러 동생도 가장 사랑하고 나도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엄마의 눈치를 보며 동생을 안아주었다. 동생을 예뻐해 준다고 엄마가 좋아했다. 나는 동생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