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by 빈자루

일단 종로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엔 종로만큼 미친 곳도 없으니까 말이다. 종로엔 노숙자들이 정류장 벤치에 누워 냄새를 풍기기도하고 넥타이들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런다. 난 그런 건 아주 밥맛이다. 왜 밥맛이냐 하면 넥타이들은 누가 눈앞에 있건 남에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이 쉰내 나는 손을 내밀며 구걸을 해도 넥타이들은 모른 척한다. 놈들이 관심 있는 건 오로지 비싼 향수나 자기가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 뿐이다. 난 그런 건 아주 밥맛이다.

아무튼 나는 종로로 공부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를 하러 가던 중인 건 아니고 혹시나 해서 가는 중이었는데 뭐가 혹시냐 하면 혹시 종로에 가면 공부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하고 있었냐 하면 나는 역사나 문법 뭐 그딴 걸 공부하고 있었는데 왜 그딴 걸 공부하고 있었냐 하면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공무원이 되고 싶었냐 하면 사실 꼭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그냥 어느 순간 공무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게 사실이다.

뭔갈 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걸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슨 성경 구절 읽듯 들여다보고 그런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 바위를 뚫는 것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Jesus Christ! 알라라도 만난 것처럼 기뻤다. 그건 사법시험에 합격한 어떤 여자 고아가 썼던 수기였는데 그 여잔 돈도 없고 빽도 없어 낮에는 빵을 팔고 밤에는 칠판을 닦고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 얘길 처음 들었을 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대단한 여자이지 않은가. 돈도 없고 빽도 없는데 그 어려운 시험엘 혼자 붙고 말이다. 그런 여잔 정말 나라에서 상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그날부터 죽어라 몸땡이를 돌에다 들이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씨팔. 내 돌덩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는 거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짓을 포기했다. 결군엔 다 뻥이었던 거다.

아무튼 낙수가 어떻고 바위가 어떻고 지껄이는 인간들은 아주 엉터리들임에 틀림이 없다. 아니면 지 영웅담을 신문에 싣고 싶어 안달이 난 멍청이들이거나. 그딴 멍청이들은 남이 바위에 깔려죽건 말건 관심이 1도 없다.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남들이 자길 어떻게 봐주느냐는 것 뿐이다. 그게 놈들이 떠벌리는 이유다.


종각역 3번 출구에서 보니 비가 사방팔방으로 튀고 있었다. 양말이나 신발 따윌 버리고 저길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 원래 있던 독서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원래 자취방 근처에서 공불 하고 있었다.

거기 원장이 아주 죽여주는 인간이었는데 공부의 신 같은, 뭐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서울대도 나오고 행시도 붙고 해서 아주 높은 공무원까지 했었는데 퇴직하고 할 일이 없으니까 독서실을 차린 것이었다. 나는 그게 아주 멋있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원장은 적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찾아냈기 때문이다. 공부도 좀 했겠다,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들 훈계도 해주고 위로도 좀 해주고 그러는 게 난 멋있는 생각이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죽을 때까지 목에 힘주고 잘난 척하는 인간들과는 다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했다.

원장은 독서실에 나올 때도 양복바지에 셔츠를 입고 나왔다. 머리를 반으로 곱게 넘기고 정확한 시간에 나와 정확한 자리에 앉았다. 안경을 꼭 맞게 걸치고 정해진 자리에서 신문을 봤다. 그의 자리는 독서실 입구의 유리 데스크였다.

그는 거기 앉아 신문을 보는 척하며 애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체크했다. 어쩌면 정말 신문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님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신문을 보는 척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줌을 싸러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그의 앞을 지나쳐야 했다. 그가 거드름을 피우며 종이장을 천천히 넘기면 마치 내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거만하게 눈을 깔고 신문을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어두운 방에서 졸고 있으면 원장이 모기채를 들고 의자를 밀며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리면 졸다 일어나 허리를 곧게 펴고 노트에 동그라미나 엑스를 더 크게 그리곤 했다.

틱. 모기가 전기불에 타 죽는 소리가 들리면 집중력이 높아졌다. 모기 타죽는 냄새가 좋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제대로 된 교육자였다. 왜냐하면 뭐 하나를 읽고 다리를 긁고 뭐 하나를 외우다가 팔뚝을 긁고 하는 짓은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싸구려 모기채를 가지고 모기를 잡으러 돌아다녔다면 그는 그정도로 훌륭한 교육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리가 크게 날까 봐 고급 모기채로 모기를 잡으러 다녔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제대로 된 교육자였다. 적어도 조용한데서 공부하는 공시생들을 염려는 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도 인생에 실패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패라곤 전혀 모를 줄 알았는데. 아주 옛날에 행시에 붙고 내쳐 사시까지 준비했었는데 그때 결혼하고 애도 생기면서 그게 잘 안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때 사시를 포기했던 게 평생의 한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했다. 인생에 후회할 짓 같은 건 남기지 말라고. 한번 실패하면 그게 평생 따라다닌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이 망할 놈의 인생은 거지같이 치사한 거다. 딱 한 번. 딱 한 번 실수를 하거나 일을 망쳐버리면 그게 더러운 껌 같은 게 되서 평생 그 인간을 따라다닌다. 밥을 먹거나 똥을 싸다가도 문득 그게 생각이 나서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정말 불쌍한 존재이다.

하루는 원장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취미 삼아 법 공부를 해보시는 게 어때요? 그가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들었다.

이 나이에 무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문 쪼가리를 천천히 넘겼지만 분명 그는 웃고 있었다. 아마 상상만으로도 좋았나 보다. 그게 뭐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원장의 아들이 독서실에 나와 원장을 대신했다. 원장의 아들은 나랑 나이가 비슷했는데 원장이 아프거나 약속이 있으면 대타를 하는 거였다. 우리는 담배를 종종 같이 피웠는데 자기는 아버지가 법대를 가라고 해서 법대를 갔다가 도저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냥 놀았다고 했다. 그리곤 졸업을 하고 아버지가 로스쿨에 가라고 했는데 자기는 변호사 같은 건 되기도 싫어서 비행기 조종 학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소한 자기가 되고 싶은 게 있으니까 말이다. 그가 언젠가는 하늘을 날으며 독서실 위를 지나갈지도 모른다. 예쁜 스튜어디스들이 잔뜩 탄 비행기를 타고 말이다. 그리곤 조종실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하겠지. 아버지. 그때 아버지 얘길 안 들길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고 말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 독서실을 나와 새 독서실로 가는 중이다. 아까 원장에게 독서실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얼마 전부터 도저히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는 상태다. 친구들은 다 취업하고 시험도 붙고 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나만 자꾸 떨어지니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운이 좋다면 나랑 비슷한 사람도 만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럼 나는 조금 덜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소울메이트나 러닝메이트. 뭐 그딴 걸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독서실을 옮기겠다고 원장에게 말했다. 처음엔 원장이 나를 다독이며 자리를 옮겨 다니지 말라고 지시하더니 나중엔 포기를 했다.

“지금 안되면 영영 안 되는 걸세.”

짐을 싸 들고 독서실을 나오는데 원장이 유리 벽 너머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노라고 말을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신경을 써 주신 것과 끝까지 조언을 해 주신 것 잊지 않겠다고도 말을 했다. 이곳을 떠나는 것은 단지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이지 이곳이 공부하기에 안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도 말을 했다. 그리고 시험에 붙으면 꼭 인사를 드리러 오겠다고도 말했다. 그리곤 뭔가 말을 더 덧붙이려다 그게 다 쓸데없는 짓인 것 같아 그냥 밖으로 나왔다.

비가 죽죽 떨어지고 있었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게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맨날 담배를 피우던 담벼락에 기대서 반대편 벽에 물이 흐르는 걸 봤다. 어딘가를 떠나야 할 때는 꼭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야 정말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고 있는데 독서실 계단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봤더니 원장이 양손에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두 개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반가운 마음이 들어 담배를 숨기고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 인간이 나를 보더니 본 척도 안하고 쌩하니 쓰레기 장으로 사라져 버리는 거다. 마치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게 상장을 받으러 나가는 것처럼 급한 일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나는 그 길로 종로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비가 거지같이 퍼붓고 있었다. 종각역 3번 출구에는 말이다.











https://youtu.be/rO9CjXOS08c



<혹시 안드로이드나 아이폰으로 동영상 링크가 연결이 안되시는 분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영상 재생 안됨 오류 15가 뜨면서 링크 활성화가 안되는 문제가 발생해서요.


노트북으로는 링크가 열리는데, 제 핸드폰인 안드로이드로는 연결이 안되네요.


브런치 어플을 통해서 링크를 열 경우 자체 웹브라우저를 통해 링크를 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사례 혹은 폰으로 해도 열리는 사례가 있으시면 참고해서 문제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모바일로 위의 링크가 열리지 않으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활용하셔서 최신 업데이트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EB%8F%8C%EA%B3%A0%EB%9E%98%EB%8B%A4%EB%A6%AC%ED%81%B4%EB%9F%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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