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by 빈자루

씨발. 어떤 새끼가 밀치는 바람에 발이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물기가 밑창으로 스미고 들어와 발바닥이 축축해졌다. 걸을 때마다 미끄러워서 발가락을 곤두세우고 걸어야 했는데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이대로 독서실로 간다면 꼬랑내가 진동할 게 뻔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은 만나러 가는데 첫날부터 더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싶지는 않았다. 운이 좋다면 친구를 사귈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난 원래 대학교를 졸업하고 홍두와 같이 공부했었다. 홍두는 내 대학교 친군데 얼굴이 빨갛고 동그래서 홍두라고 불렀다. 홍두도 같이 공무원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홍두와는 연락을 안 한 지가 좀 됐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종로 어딘가에서 독서실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양말을 사러 편의점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언가를 사야 하는 일 따위는 더럽게 귀찮은 일이다.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아 무턱대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지만 막상 뭔가를 골라야 할 때는 뭐가 필요했는지 기억조차 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잘 사지를 않는다.

어쨌든 이번엔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늘 혼자이다.

이 바닥에선 누군갈 사귀는 따위일 일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밥 하나를 먹을 때에도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질 정확하게 따져보고 밥을 먹어야 한다. 이 바닥에 들어오면 모두들 알게 된다. 누구나 버거워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이다. 확실하게 나는 붙을꺼야, 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초조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리를 이루고 싶어 한다. 같은 인간들끼리 모이면 덜 무서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 인간이 나랑 다른 인간이면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사귀기 전엔 잘 따져봐야 한다.

만약 이 바닥 인간 말고 다른 바닥의 인간을 만날 생각이라면 그런 건 일찌감치 접어둬야 한다. 다른 인간들은 이 바닥의 사정을 모른다. 그런 인간들을 만나면 그때마다 내가 왜 힘든가에 대해 열세 시간 반씩은 떠들어대야 한다. 온 힘을 다해 놈에게 내가 왜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래 힘들겠구나’ 이다.

그래 힘들겠구나, 라니. 마치 지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래 오늘 조금 힘들었어’라고 감상했다는 듯이 뻔뻔하고 태연하게 떠들어 대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곤 어이 없어 맥이 빠진 사람 앞에서 직장 상사가 어떻다는 둥, 주식 시장이 어떻다는 둥 개소리를 스무 시간 이상씩 떠든다. 그런 개소리를 듣고 있자면 차라리 지옥에나 떨어져 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기 싫으면 그냥 나랑 비슷한 처지의 인간을 만나는 게 좋다.

그런데 꼭 비슷한 처지의 인간들을 만난다고 해서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바닥의 인간들은 지나치게 예민하다. 이 인간들은 밥을 먹기 위해 모일 때에도 꼭 오 분씩 늦게 나온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문제 하나를 더 붙들고 일어나질 않는 거다. 돼지같은 인간들.

처음엔 그냥 좀 늦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나중엔 밥 시간마다 이 인간과 만날 시간이 될 때마다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짓이 손해를 보는 짓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빌어먹을 약속시간 같은 건 결국 난장판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치사한 짓거리는 메뉴를 정할 때까지도 이어진다. 공시생들은 먹을 거에 더럽게 민감하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건 뭘 먹을까 선택하는 게 유일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김치찌개를 먹자고 하고 상대도 그걸 먹겠다고 했어도 이 인간이 정말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서 김치찌개를 먹자고 했는지 아님 김치찌개를 먹기 싫은데도 내가 먹자고 하니까 먹겠다고 한 건지, 밥 먹는 내내 따져봐야 한다. 이 인간들은 상대가 싫어할까 봐 거절도 못하고 결정도 잘 못 내리기 때문이다.

먹는 동안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다 비슷한 상황인데 상대가 자꾸만 우는 소리를 내면 밥 먹는 사람이 질려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우는 소리에 진정으로 공감을 하며 맞장구를 쳐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짓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면 이 인간이 진짜로 서글프고 외로워서 그러는 건지 아님 나한테만 더럽게 엉겨붙느라 그러는 건지 상대를 의심하게 된다.

정말이지 밥 먹는 동안 남들한테 하소연이나 하려고 밥을 먹는 인간들은 남의 에너지를 뺏어 자기 위로나 하는 개새끼들이다. 그런 인간들은 남 앞에선 실컷 울고 분명 집에 가다가 핫도그나 사 먹으며 어린 여자친구한테 전화나 걸어 낄낄거리는 개새끼들일 게 뻔하다. 이기적인 새끼들.

자기는 꼭 합격할 거야, 라며 자신만만한 인간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 자식들은 대개 공부를 오래 한 장수생들이거나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짜 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장수생들은 초짜가 들어오면 일단 가르치려고 든다. 교재는 누가 좋네, 강의는 누가 낫네.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는 열에 아홉은 틀린 소리다. 틀린 소리인데도 놈들이 미친듯이 지껄이려고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 바닥을 영영 뜨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놈들은 초짜들이 자기를 존경해 주기를 악착같이 바란다. 그게 놈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초짜들에게 떠들어 대는 이유다. 그게 놈들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초짜들 생각에 지들은 이미 연금생활자다. 놈들 눈엔 지보다 먼저 공부를 시작한 놈들은 죄다 실패자로 보인다. 겉으론 네? 네? 하며 정보를 빼먹고 비위를 맞춰도 속으론 장수생 놈들을 엄청나게 무시하며 증오하고 있다. 그러다가 초짜생이 장수생이 된다. 뭐 그런 식이다.

웃긴 건 여기 인간들은 죄다 남을 평가하는 데에만 이력이 나있어서 마빡에 죄다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는 거다.

저놈은 독해서 곧 나갈 놈, 저놈은 불성실해서 가까이하면 안 되는 놈. 맨날 똑같은 데서 똑같은 인간들만 보고 있으니 남을 평가하는 덴 다들 도사들이시다. 남들 마빡엔 잘도 스티커를 붙이지만 정작 자기 마빡엔 어떤 스티커가 붙어 있는질 모른다. 남을 평가하려고 기를 쓰는 걸 보면 모이를 쫓는 수탉같다. 이런 수탉들이랑 어울리고 있자면 차라리 물에 빠져 금붕어 입에 키스라도 하고 싶어진다. 난 그런 건 딱 질색이다.

딱 한 번 괜찮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마흔도 더 돼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덩치가 엄청 크고 늘 법전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아저씨는 늘 혼자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봤다. 그러면서도 엄청 빠르게 밥을 먹었는데 밥이랑 반찬을 식판에 엄청 쌓아놓고 먹었다.

밥을 다 먹고선 꼭 정수기 옆에 서서 찬물을 들이켜며 식당 아줌마한테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다.

"내일은 고기가 나오나요?"

그러면 아줌마가 깔깔깔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고 아저씨도 그 아줌마 앞에선 껄껄대며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급 심각해져서는 컵을 바구니에 떨구고는 좁은 복도를 따라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옆구리엔 조그만 법전을 끼고서. 매식 식당 끝에 붙어있는 작은 고시원이었는데 아저씨는 그 방에서 공부를 했다.

아저씨나 나나 늘 혼자였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이었다. 아저씨가 밥을 먹다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통화내용을 듣다가 나는 그게 딸에게서 온 전화라는 걸 금방 알았다. 통화를 하는 내내 아저씨 입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 열 잠자고 가요. 아빠도 보고 싶어요. 아빠도 사랑해요.

돌격 머리를 한 아저씨의 우악스러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몰래 듣고 있자니 나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응, 이제 엄마 바꿔줘요.

아저씨가 아이를 전화기에서 떼어 놓으려 하는데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걱우걱 음식을 씹던 아저씨 이마 골이 빨갛게 변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아이들은 원래 그런 법이다.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울고 떼도 쓰고 그런다. 그런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해를 해줘야 한다.

마침내 아이를 달래 아내와 통화를 하더니 아저씨 표정이 금세 변했다.

그래. 응. 알겠어.

그래. 응. 미안해.

아저씨 얼굴이 더 빨개지고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땀을 닦으며 통화를 하면서도 아저씨는 계속 국그릇과 밥그릇에 숟가락을 쳐넣었다.

통화 상대가 뭐라고 하는진 안 들어봐도 뻔했다.

이번엔 잘 되는 거냐.

명절 때는 어떻게 할 거냐.

그러다 안되면 어떡하냐.

뭐 그딴 소리였을 거다.

하지만 아저씨가 여길 와서 어떻게 공부하고 밥을 먹고 하는질 알았다면 아저씨 아내가 그렇게 얘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아저씨는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를 하고 하루 종일 해도 안들어오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었단 말이다.

아저씨 표정이 통화를 마치고 완전히 가 버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정말 딱 5초 만에 식판에 쌓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식판을 비우러 걸어가면서도 아저씨가 입 속의 음식을 우걱우걱 씹었다. 그리곤 찬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쪽으로 다가왔다.

그때.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주치고야 말았다.

빨간 눈.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발가락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양말에 난 구멍 사이로 발가락이 뒤틀리듯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일은 고기가 나오나요?”

매일 하던 시시한 농담도 하지 않은 채.

아저씨 몸이 창을 가려 복도가 어두워졌다. 아저씨가 방으로 사라졌다. 구멍 난 양말이 잔뜩 개켜져 있을 좁은 방으로.

아저씨가 뭐 양말에 구멍이 났거나 뭐 그딴 걸 신경 쓸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좀 더 세심하게 챙겨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다 큰 어른이 밥을 먹다가 우는 거를 나같은 사람한테 들키고 그러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정말 그 사람을 미치게 만든단 말이다.











https://youtu.be/nT6Uz5FILXs



<소설에 욕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날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이번 주도.... 다시.... 화이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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