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로 가기 위해서는 술집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빗방울이 차가워 몸이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가방을 좌우로 흔들면서 걸었다. 그리곤 어느 영화에서 봤던 중세 시대 사제를 떠올렸다. 형제님. 참회만이 살길입니다.
나는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아마 홍두가 옆에 있었다면 키득거리며 맞장구를 쳐줬을지도 모른다. 도란나. 니 고마해라.
홍두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을 꺼내 문자 온 게 있나 확인을 하고 모드를 진동으로 바꿨다가 다시 무음으로 돌려놓았다.
홍두와 나는 대학교 신입생 OT 때 처음 만났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알은 척을 하는 게 어색해서 멀리 떨어져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홍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니 언제부터 담배 핐노?”
“고1”
사실은 수능이 끝난 후 부터였다.
"니 촌에서 왔나?"
"응."
나는 홍두에게 담배 피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니 이거 할 수 있나?”
홍두가 담배 끄트머리를 잡아 자기 입 쪽으로 휙 던지더니 입술로 필터 부분을 물어 챘다. 그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나중에는 홍두가 나보다 담배를 더 잘 피웠다.
“우예 하노?”
나도 담배를 입 쪽으로 던졌지만 내껀 볼에 맞고 떨어졌다. 나는 홍두와 있을 때는 그의 사투리를 따라 했다.
“이래 해라 이래.”
홍두가 담배를 새로 꺼내 자기 입 쪽으로 다시 던졌다. 홍두는 입술로 귀신같이 담배를 낚아챘다. 홍두는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많이 뱉었지만 가래침은 아니었다. 라이터 불꽃을 빨아들이는 것도 홍두가 가르쳐줬고 연기로 도나쓰를 만들어 뱉는 것도 홍두가 가르쳐줬다. 홍두는 할 줄 아는게 많았다.
우리는 거의 싸우지 않았는데 딱 한 번 그가 내게 엄청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니도 내 무시하나?”
홍두가 길에 가방을 집어 던지며 내게 물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홍두가 말하길 아까 강의실 앞에서 내가 홍두에게 담배를 빌렸었는데 홍두가 본인이 물고 있던 담배를 내게 주었고 내가 그 담배를 물면서, “이 새끼 침 졸라 묻히네.” 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홍두가 좋아하는 한 학번 위의 선배가 주위에 있었는데 내가 떠드는 걸 보고 그녀가 홍두를 더럽다는 듯이 쳐다봤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네가 그 선배한테 관심이 있는 줄 몰랐고 그 선배가 주위에 있다는 걸 알았으면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내 행동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 나 자신이 미울 지경이라고도 말했다.
“니 진심이가?”
홍두가 붉어진 볼을 떨며 내게 물었다.
"응."
“진짜 제?”
홍두가 재차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러자 홍두의 표정이 금방 울 것처럼 변하더니 아까는 오히려 자기가심했다며 나에게 사과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은 반인 서울놈들이 자기를 빨간 돼지라며 놀렸었다고도 말했다.
"씨발놈들이네."
내가 그들에게 욕을 퍼붓자 홍두가 웃었다.
“씨발 새끼들.”
나는 홍두의 그런 점이 좋았다. 뭐가 좋았냐 하면 홍두는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을 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금방 사과를 한다는 것이었다. 홍두는 재수없게 굴지 않았다. 나는 그게 홍두의 위대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홍두를 좋아했다.
술집 반대편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후드를 내려 얼굴을 가렸다. 이런 데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최악이다.
몇 달 전 학교에 갔다가 후배 놈을 만난 적이 있다. 그놈은 시험에 진작에 붙고 공무원 준비반 실장을 하는 놈이었다. 나는 졸업한 지가 좀 지나서 웬만하면 학교 쪽으로 잘 가지를 않는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무얼하고 지내는지와 시험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놈이 신입생일 땐 내가 그놈 앞에서 엄청 후까시를 잡으며 잘난척을 했었는데 지금은 걔가 시험도 붙고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아서 옷도 잘 입고 다닌다. 그런데 나는 걔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선배인데도 시험도 맨날 떨어지고 옷도 후드만 입고 다닌다.
그 공무원 준비반에서 모의고사를 쳤었는데 시험을 치는 내내 문제가 무슨 말인질 몰라 답을 다 밀고 나왔었다. 그래도 채점한 시험지를 돌려받기 위해 어물렁 거리는데 하필이면 그놈이 사람들한테 결과지를 나눠주고 있는 것이었다. 왕자님처럼 단상에 올라서서 하나씩 사람들 이름을 불러 재끼면서 말이다. 그럼 우리는 차례대로 나가서 왕자님 발아래에 널브러진 시험지 중 자기 시험지를 찾아 돌아가야 했다. 나랑 그놈이 뭐 서로 증오를 한다거나 원한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놈이 내 시험지를 보고 이름을 부르는 게 싫었다.
ㅇㅇㅇ.
빌어먹을.
개새끼가 쌀쌀맞게도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얼어있는 표정으로 나가 그 놈 아래 널려있는 시험지들을 뒤졌다. 그런데 망할. 내 시험지가 암만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 거다. 나는 빨리 그걸 찾아서 도망치고 싶었다.
ㅇㅇㅇ.
왕자님이 다음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어리버리한 인간들이 뭉터기로 왕자님의 발 아래 모여서 고개를 숙이고 자기 이름을 찾아 헤맸다.
왕자님은 목소리도 좋지.
ㅆㅂ.
내 시험지가 하필 딱 그놈 발 밑에 있었다.
나는 땀을 흘리며 놈의 아래에 가서 섰다.
그리고 시험지를 빼내 돌아가려는데 왕자님 같은 그 놈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놈이 생긋 웃었다.
형. 열심히 하세요.
빌어먹을.
그 이후로 나는 학교 근처에서는 건널목도 건너질 않는다.
상처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가 의도를 했건 의도를 하지 않았건 간에 무조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약한 사람들은, 빌어먹을. 그게 특징이다.
공부를 접고 취업을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왜 여태 고생을 하다 그만두느냐, 니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진 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지들 멋대로 떠들어 댈게 뻔했다. 심층 면접이니 압박 면접이니 하는 뭐 그딴 건 어떻고. 면접관 놈들은 지들이 외과 의사라도 된 양 머릿속을 파헤치려 들 게 뻔했다.
놈들이 매스를 들고 머릿속을 해부하려는 앞에선 울음을 터뜨리거나 비겁한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놈들이 나를 회사에 붙여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외과의사 놈들은 눈앞에 있는 얼간이를 쿡쿡 찔러도 보고 살살 달래도 보면서 관찰을 한다. 그러곤 이 인간은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떨어진 놈. 저 인간은 머리가 나빠서 떨어진 놈. 이런 식으로 분류를 한다. 얼어죽을. 분류의 신 같은 게 붙었나. 그게 놈들이 하는 일이다.
도대체 왜 시험에 떨어졌는지를 알아내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덜떨어져서 떨어졌거나 게을러서 떨어졌거나 둘 중에 하나일텐데 말이다. 하긴 놈들은 외과 의사니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었는데 아무것도 안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 나이에 뭔가를 포기하느니 그냥 죽어 버리는 게 맞다. 요즘 같은 고스펙 시대엔 성공만 하며 살아온 인간들도 빼곡히 넘친단 말이다. 한 번 포기해 버리면 낙인이 찍히는 거다.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죽을 각오로 버텨야 한다. 그래야 스펙에 흠이 안 생길 수 있다.
추리닝 차림의 남자와 여자 무리가 재잘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리 속에서 덩치 하나가 입을 벌리고 떠들고 있었다. 처음 이 근처의 독서실을 다닐 때도 봤던 인간이었다. 뻔뻔스럽게 떠드는 녀석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놈과 눈이 마주칠까봐 후드를 아래로 내렸다. 놈이 여자들을 향해 게걸스럽게 떠들며 옆을 지나갔다.
독서실 건물에 도착했다. 우산을 털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분홍색 더플코트와 양털 후리스를 입은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그 곁에 검은 우비를 입은 배달부 하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달부의 검은 우비 자락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양털 후리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더플 코트에게 속닥거렸다. 어쩐지 이번 독서실에서는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연락 온 곳이 없었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무음으로 돌려놓았다.
덜컹.
엘리베이터에 타다가 몸이 문에 끼었다. 나를 보고 후리스가 분홍색에게 다시 속닥거렸다. 분홍색이 킥킥거렸다. 문이 다시 열리자 나는 안으로 들어가 잽싸게 들어가 몸을 벽에 바짝 붙였다. 배달부의 우비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덜컹.
엘리베이터가 서고 배달부가 내렸다. 분홍색이 빠르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 후리스가 분홍색에게 몸을 기대고 다시 킥킥거렸다. 나는 폰은 꺼냈다 집어넣었다. 배가 아프고 발이 차가웠다.
가만 보니 엘리베이터 바닥이 온통 껌 자국 투성이였다. 대체 누가 껌을 여기 뱉어놨지. 나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껌을 보다가 손을 주물렀다. 손이 차가웠다.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모습이 일그러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후리스와 분홍색이 내렸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혹시 폰으로 안 보이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타서 들어와 주세요.
https://www.youtube.com/@%EB%8F%8C%EA%B3%A0%EB%9E%98%EB%8B%A4%EB%A6%AC%ED%81%B4%EB%9F%BD
<업뎃이 많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담배 피우는 장면을 찾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했네요 ㅋ 담배 피우는 묘기가 뭐라고 ㅋㅋ... 브라운아이드소울 뮤직비디오가 새로 나왔는데, 정말 좋네요... 저도 정봉이만큼은 생겼는데, 왜 정봉이는 인기가 많고 저는 인기가 없을까요... 정봉이만큼은 생긴 것 같은데... 아닌가봐요... 브라운아이드 소울 뮤직비디오 꼭 보세요. 보고 울 뻔 했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또 격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