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노량진은 생선이 도로 위에 팔딱일 것 같은 동네였다. 그런 길바닥에 고깃배가 있을 것 같은 데 없었고, 입시학원이 없을 것 같은 데 있었다. 나는 육교를 지나는 사람들에 밀려 동생이 다니는 재수 학원 간판을 찾았다.
동생이 좁다란 나무판 사이를 지나 교실 뒤로 나왔다. 동생의 얼굴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나는 동생을 끌고 근처의 고깃집으로 갔다. 불판 위에 얇은 고기가 하얀 국물을 흘리며 익었다.
“할만해?”
내가 물었다.
동생은 말없이 웃으며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나는 그래도 버텨야 한다,라고 하려다 우물거리는 동생의 입을 보았다. 나는 고기를 하나 더 주문했다.
“형은 잘 있어?”
동생이 물었다.
“너나 잘해, 인마.” 내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동생이 말했다.
“뭐가?” 내가 되물었다.
“그냥”, 이라고 동생이 답했다.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헤어지는 데, 동생이 나에게 힘을 내라고 말했다. 뭐라고? 내가 뒤를 돌며 묻자, “힘내라고.” 하며 동생이 말했다.
“내가 왜?”
동생을 빤히 보며 물었다.
“그냥, 힘내라고.”
나는 동생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알았어, 너두.” 하고 돌아섰다.
그해 동생은 삼수에 실패했다. 동생은 지방의 직업 전문학교로 들어갔다. 나는 동생과 연락이 뜸해졌다. 나는 나 대로 취업 준비에 바빴다.
-OO전자는 시계탑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시계를 기준으로 시간을 맞춥니다. 그 시계탑 속의 작은 부품이라도 된다면, 그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동기들은 내 스펙으로 인턴 입사에 성공했다고 하면 모두 나를 칭찬했다. 6개월간의 수습 근무 후 평가를 통해 정식 직원으로 임용하는 조건의 채용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정말 성실하셨나 봐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지랄하네’,라고 생각했다.
동기들은 스펙들이 대단했다. 나처럼 학점이랑 봉사점수만 높은 입사자는 거의 없었다. 스카이는 기본이었고, 이름을 따라 하기 힘든 해외 무슨 대학, 석사와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지랄하네, 지들은 얼마나 잘났다고. 스카이는 스카이끼리 뭉치고, 해외 대학은 해외 대학끼리 뭉쳤다. 뭉쳐진 곳에서 떨어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끝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버티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굴러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빠와는 달랐다.
회사생활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적들은 경쟁국에도 있고, 경쟁사에도 있다지만, 가장 큰 적은 파티션 너머에 있었다. 작은 책상을 간신히 가리고 병렬식으로 길게 나열된 칸막이 너머, 너머의 존재들. 그들은 사내 게시판에도 있었고, 그룹 메신저 속에도 있었다. 모니터를 보며 남들의 통화 내용에 집중하는 귓속에도 있었고, 종이컵을 마주치면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들의 눈 속에도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과 같았다. 나는 매일 그들과 싸웠다. 싸움에서 이겼는지, 졌는지는 알 수 없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김○○씨. 천천히 하세요.”,라는 말에 나는 화장실을 뛰어갔다가 왔고, “정말 천천히 하라니깐요.”,라는 말에 나는 오줌을 참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점점 그 속을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동기들보다 빠르게 빠르게 출근하고 늦게까지 남아있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출근 시간에 먼저 와서 앉아 있는 동기를 보면 불안했다. 퇴근하면서 남아있는 동기에게 인사를 하는 건 더욱 불안했다. 하지만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아빠나 동생과 다르니까.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니까.
사람들과 말을 섞는 일이 적어졌다. 동기 모임은 물론, 식사 후 선배들과의 커피 타임도 불편했다. 혼자 앉아서 받은 일을 처리하는 게 편했다. 선배들은 쉬엄쉬엄하라며 일거리를 더 주었다. 나는 그 일을 받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중간 결과가 발표 나는 날이었다.
“내부 메일로 중간 성적을 보냈어요. 각자 확인하시고 부족한 부분 노력하세요.”
인사팀장이었다. 메일을 열었다. 보통. 각주에 맡은 일은 성실히 처리하나, 동료들과의 관계 형성이 아쉬움. 동기들 간 상호 평가 결과였다. 관계 형성이 아쉽다는 말보다, 보통이라는 단어가 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보통. 나는 보통이었다. 고로 나는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나는 보통의 사람처럼 떨어질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정규직 전환에 최종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