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평범하고 밋밋하기 때문에. 자취방에 여러 날 누워 혼자 내린 결론이었다. 보통의 존재여선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나는 인터넷을 열어 각종 자격증을 검색했다.
-자격증 없이 회사에 입사하는 건 맨몸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발총이라도 들게 지금이라도 때려치우고 공부하고 싶네요 ㅠㅠ
어느 게시판에서 본 글이었다. 지금 내 나이 스물일곱. 길게 본다면 삼 년 정도 투자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 판단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해서 삼 년 안에 든든한 장총 하나를 손에 쥐자고 결심했다.
전공과 가장 겹치는 시험을 검색했다. 회계 과목이라면 학교 다니면서 이골이 나게 공부했었다. 다만, 시험 준비할 동안의 생활비가 걱정이었다.
취업이 늦어질 것 같다는 말에 아버지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하라고 말을 했다. 아버지는 나를 믿는다고 얘기했다.
나는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고시학원 근처로 자취방을 옮겼다. 2.5평의 잠만 자는 방이었다. 책상과 침대만 있는 방을 보고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업을 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스터디를 한다며 카페에 가고, 독서실을 끊을 때 나는 혼자 고시방으로 갔다. 가끔 복도에서 옆방 사람을 만나면 목을 가볍게 숙이고 벽에 몸을 붙여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게 사람과 마주하는 전부였다.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취업하고 자리 잡았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면 공부에 방해만 됐다. 폰은 항상 꺼놓았고 자기 전에만 열어봤다.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가족들의 안부도 점점 뜸해졌다. 잘 있냐는 엄마와 동생의 물음에 며칠이 지나고야 그렇다고 답장을 했다. 엄마가 박스에 반찬을 가득 채워 보냈지만 넣어둘 곳이 없어 책상 밑에 며칠을 내려두었다가 모두 상해 버렸다. 나는 엄마에게 먹을 것을 보내지 말라고 얘기했다.
첫해 1차 시험에서 몇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수험 게시판에선 초시생이 그 정도면 잘한 거라고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다음 해엔 한 과목 과락으로 시험에 떨어졌다. 게시판에서 시험 전날 열렸던 학원 특강에서 그 과목 문제가 8개나 나왔다고 난리가 났다.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게시판에서 용하다는 강사들의 책과 동영상을 사며 2차 준비를 했다. 내년엔 꼭 한 번에 2차까지 붙어야 했다.
세 번째 1차 시험에선 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차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같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같았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서른, 고시 실패, 취업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누구에게 묻고 싶었지만 물을 곳이 없었다. 인생 존망, 이라는 댓글도 있었고 취업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라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험 생활을 그만두기가 두려웠다. 1차와 2차 준비, 취업과 고시 준비를 오락가락하며 1년이 지났다. 네 번째 시험에선 네 과목을 과락했다. 나는 그렇게 2.5평 방에 홀로 남았다.
처음, 고향에 내려갔을 때 아빠는 내가 많이 지쳐서 쉬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누워있는 날이 많아지고, 그 시간이 길어지자 초조해했다. 불쑥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문이 잠긴 걸 보고 말없이 돌아갔다. 엄마는 방 문고리에다 담배 봉지와 견과류 과자 같은 것을 걸어놓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책장에 꽂힌 전공 서적들을 보며 누워있었다. 책을 펼쳤다가 다음 장으로 넘길 자신이 없어 책의 겉을 보기만 했다. 책 표지를 보다가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잤다. 자고, 자고. 또 잤다. 홑이불을 어깨에 덮고, 그 끝을 쥐고 옹크린 채, 자고, 자다, 새를 생각했다. 새. 그것은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고 둥지 밖으로 떨어져 목을 구부리고 있었다. 몸보다 긴 목을 배에 붙이고, 그것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의 날개에는 털이 없었다. 나는 그 새를 생각했다.
어떤 때는 웅크려서 태아를 생각했다. 그리고 영숙이를 생각했다. 태아는, 그 새와 같았다. 그리고 영숙이와 같았다. 나는 몸을 더욱 웅크렸다.
어떡하지. 서른이 넘어 아무것도 못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뭔가는 되어 있겠지. 뭔가가 아니어도, 뭔가가 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겠지. 그런데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이 되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방에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 창틈을 열고 담배를 피우다, 지나가는 노인을 보면 부러웠다. 지팡이를 짚고 한낮의 아파트 단지를 걷는 그들을 보면,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모두가 잠들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을 때,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노인들이 걷던 보도 위를 조금 걷다가, 아파트 옆 둔덕 아래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다 앞 동에 사는 젊은 남자가 슬리퍼를 끌고 오면 자리를 피했다. 그의 머리카락도 떡 진 채 머리 위로 올라와 있었다. 가끔은 그가 나를 보고 자리를 피했다. 우리는 서로를 못 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