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동생이 내려오면 밖으로 나갔다. 동생은 서울의 작은 전기 회사에 취업해 배전 일을 했다. 동생의 옆에서 걸으면 내가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일에 일하다가 주말에 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동생의 곁에서 걸으면 안심이 되었다. 동생은 나를 위해 주말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
어느 날, 동생이 야구공과 글러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형 나가고 싶으면 말해. 같이 나가자.”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싫다고 소리쳤다. 동생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글러브 위의 공이 굴러와 머리맡에 멈추었다. 나는 공을 집어 동그란 면을 매만졌다. 오돌토돌 두른 실밥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공을 멀리 던져 보고 싶어졌다. 이불을 걷어내고 동생에게 다가갔다.
“가자.”
우리는 함께 나갔다. 밖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해가 운동장 너머의 산 뒤로 지고 있었다. 운동장엔 빈 골대에 공을 차는 조무래기 몇과 그 주위를 도는 아줌마 몇이 전부였다. 우리는 캐치볼을 시작했다. 공이 멀리 날아 동생의 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말없이 공을 주고받았다.
“일이 힘들진 않아?”
내가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의 공이 나에게 캐치되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괜찮을 때도 있어.”
동생이 내게 말했다. 공을 멀리 던져도, 받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형은 어때?”
동생이 물었다. 푹. 동생의 공이 글러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을 찾았지만,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내가 물었다.
"전봇대 위에 올라가는 거 안 위험해?"
동생이 말했다.
"응. 조금."
내가 물었다.
"위에 올라가면 어때?"
동생이 말했다.
"위는 점점 넓어지고, 아래는 점점 좁아지지."
동생의 공이 나의 글러브에 캐치되었다.
내가 물었다.
"계속해서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데?"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우리의 캐치볼은 계속 되었다.
고민을 하다가, 내가 물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동생이 말이 없었다. 대신 동생의 공이 나의 글러브로 날아왔다. 공은 다시 내 손을 떠나 멀리 긴 포물선을 그리며 동생의 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떻게 할지 모를 땐,” 동생이 벌어진 어깨를 돌려 공을 던지며 내게 말했다.
폭. 공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그렇게 있어도 돼.” 동생이 말을 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공을 감싼 채, 글러브를 벌려 그 안을 툭툭 쳤다. 그리고 공을 들어 동생에게 높이 던졌다. 공은 안전하게 동생에게 캐치 됐다.
“엄마랑 아빠한테 미안해.”
내가 말했다.
“엄마랑 아빠한테 미안해하지 마.” 동생이 말을 받았다. 동생의 공이 돌아왔다.
“힘들 땐 형 생각만 해. 그래두 돼.”
그래,라고 내가 작게 말했다.
스탠드 불이 꺼지자 조무래기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골대 그물에 공을 차 두고 운동장을 나섰다. 우리는 길가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서로의 공을 받았다. 공은 높게, 때론 낮게, 가끔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구르거나, 날아서 상대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꼭 돌아왔다.
“혼자가 되는 것 같아 무서워.”
동생에게 말했다.
“무서워하는 건 모두다 같아.”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너도?”
“응.” 하고 동생이 말했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동생과의 캐치볼이 계속되길 바랐다. 우리는 공이 희미하게 보일 때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나의 공이 굴러가 동생의 발아래 멈추었다.
동생이 공을 주워 들며 말했다.
"나, 계속해서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 것 같아."
"어떻게 되는데?"
동생이 공을 던지며 말했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는거지."
동생의 공이 나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왔다.
하늘에선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이 흔들리며 서로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도 그것들이 보이는지 알기 위해,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