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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엽편2 07화

일기

by 빈자루

나는 매일 회사로 출근을 한다.


아니, 매일이라는 단어가 정말 매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매일이라고 느낀다.


매일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정말 매일인 것이 아니고 매일이라고 느끼는 것이 나의 감정이다.


그렇게 출근한 회사에서 나는 일을 한다.


아니,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문서를 만지고 전화를 받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일인지는 혹은 실체가 있는 무엇인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실체가 있는 것은 나라고 하는 몸뚱이가 마포에 있는 커다란 건물 7층에 가서 네모난 책상과 네모난 모니터를 보고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곳에서 역시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며 내가 하는 행동의 실체이다.


그렇게 한달을 일을 하면 회사라는 곳에서 나에게 돈을 준다. 아니, 돈을 준다고는 하지만 정말 돈을 주는 것은 아니고 단지 나의 계좌라고 하는 종이에 어떠한 숫자가 찍히는 것 뿐인데 나는 그것을 인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생활을 한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사주고 그런 식이다. 그것은 실체이다.


돈이라는 것은 사실 실체가 없다고 한다.


회사라는 것도 사실 실체가 없다고 한다.


나라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다고 한다.


학교라고 하는 것도 부모라고 하는 것도 가족이라 하는 것도 정의라고 하는 것도 화폐라고 하는 것도 교육이라 하는 것도 가정이라 하는 것도 윤리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다고 한다.


돈을 만들어 찍고 사용하고


주식을 만들어 찍고 사고 팔고


이티에프라는 것을 만들어 사고 팔고


가상화폐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사고 팔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실체 없음을 알아차리라는 계시라고도 하고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정말로 그것들은 실체 없는 것들이 맞는데


이 가상의 가상의 가상에 의한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참으로 두렵다.


실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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