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이제 쉴래.
어느 날 명월에게 말하였다. 명월은 잠자코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휴직하겠다는 나의 말을 명월이 어머니처럼 품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백수, 아니 소설가, 아니 세무사, 아니 무사이다.
(짜파게티 먹어)
전음을 보냈으나 기척이 없었다. 진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요일 오전. 명월은 그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먹이고 다시 재울 생각으로 공력을 2할 올려 전음을 다시 흘려보냈다. 일반인이라면 이 정도의 공력이 실린 음공으로도 달팽이관이 손상되겠지만, 상대는 명월. 그녀는 무림촌의 수제로, 스승의 총애를 받던 여걸이었다.
반응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안방으로 돌진하였다. 명월이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다. 주화입마? 얼른 그녀의 맥을 짚었다. 불안정한 떨림이 손 끝으로 전해졌다.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히자 옅은 신음을 뱉으며 명월이 돌아누웠다.
기마세.
다리를 벌리고 허벅지에 체중을 실었다. 양팔로 허공을 가른 후 단전에 기를 모았다.
헙.
양 손바닥이 명월의 등에 닿자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몸에 온기가 돌아올 때까지 일주천을 계속하였다.
"나 물."
정신을 차린 명월이 두 발로 이불을 걷어차며 말했다.
최근 마교의 암습이 잦아지고 있다. 다행히 이번엔 명월이 자다가 혼자 굴러 떨어진 것으로 보였지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스승의 죽음 이후 명월의 기억이 온전치 않기 때문이다.
빠르게 신형을 일으켜 부엌으로 이동해 사발에 물을 받았다. 명월이 물을 넘긴 후 자신의 등 쪽으로 손을 까닥했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려 명월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걱.
명월이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비틀거리며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뒤를 짧게 숨을 몰아쉬며 따라나섰다.
"오이 안 썰어 넣었어?"
젓가락으로 면발 속을 헤집으며 명월이 물었다. 물음과 동시에 신형을 솟구쳐 주방으로 튀어올랐다.
진전살적.
스승에게 전수받은 초식을 변형해 잽싸게 오이를 채 썰었다. 살수의 길에서 물러난 지 오래. 하지만 그간 연마했던 무공이 집안일을 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곱게 썰린 오이가 명월의 그릇 위에 올려졌다. 짜파게티 면의 열기에 오이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요즘 어때?"
명월이 물었다.
"응? 좋은데?"
면발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네."
명월은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했지만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명월의 입가에 묻은 춘장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명월.
무림촌 제일 여검.
스승의 금지옥엽.
살구검 제1계승자.
그녀의 칼 날에 내려앉은 연분홍 꽃잎을 보며
나는 절망했었고 또한 망설였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에
하얀 달이 가려지던 밤이었다.
그녀는 멀리 있었다.
"소설은 잘 돼 가?"
그녀가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묵묵히 면발을 빨아들였다.
아무 대답이 없자 명월이 한 마디를 보탰다.
"복직은 언제 할 거야?"
"어." 라고 애매하게 답을 흘렸다. 2년의 휴직기간 동안 공력이 많이 회복되었지만 전성기 때에 비하면 아직 1할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스승님. 아직 스승님의 비급을 완성하지 못했다. 혼탁해진 무림의 기를 정순하게 돌려놓기 위해서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글로 옮기는 일이 시급했다. 명월이 과거를 기억 못하는 지금 비급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이는 오직 나, 이장수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휴직을 선택했던 것이다. 왜 휴직해? 라고 묻는 동료들에겐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오직 하나. 비급의 완성이다. 그리고 외부와의 접촉을 스스로 금한 체 오직 스승님의 유지를 글로 담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로부터 언 2년.
소화도 잘되고 피부도 좋아졌지만 비급의 완성은 여전히 요원했다. 허구한 날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소설가냐고 물었지만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상대에게 머리를 내어주는 칼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 방귀냔 말이다.
식사를 마친 명월이 방으로 돌아갔다.
스승의 유지도 정순한 기도 좋지만 현대 사회에선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다.
명월...
생계를 오롯이 명월이 책임지고 있는 한 그녀의 손가락에 물 한방울 묻히게 둘 순 없었다.
명월...
빈 그릇을 설거지 통으로 옮기며 싱크대 앞에서 홀로 읊조렸다.
내 반드시...
손등 위에서 물줄기가 거품이 되었다 터지기를 반복하였다.
내 반드시 스승님의 유지를 비급으로 남겨 그대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겠소...
물방울들의 생과 멸을 견하며 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독서실과 카페에서 장수가 쓴 비급을 보며 이거 소설이냐며 묻던 사람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력이 올라와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하하. 내 비급을 보며 웃음을 숨기지 않던 동료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이건 일기도 아니고ㅡ 소설도 아니라며 평을 하던 도반들.
순간 단전에서 끌어 오른 기가 임맥과 백회, 독맥을 타고 단전으로 돌더니 물방울무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소설가라니, 그것은 당치 않다."
주검으로 발견된 스승.
불에 타던 무림촌.
쓸쓸하게 웃으며 떠나던 조평.
그를 바라보던 명월의 눈빛.
팟
부유하던 물방울들이 천천히 공전하더니 순간 증기로 화하였다.
"나는 무림촌 12대 당주.
검결 오온 선생의 마지막 수계 제자.
무사 이장수이올시다!"
와 오늘 대박 춥네요. 진짜 손발이 엄청 시려요. 나가실 때 따뜻하게 입으셔야 해요. 대박 춥네. 하루만 버티자. 오늘도 힘내세요 다들. 화이팅!! 넘 추워요!!!!! ㄷ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