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
부유하던 물방울들이 천천히 공전하더니 순간 증기로 화하였다.
"나는 무림촌 12대 당주.
검결 오온 선생의 마지막 수계 제자.
무사 이장수이올시다!"
*
스승은 현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당시 무림에는 정파와 사파를 통틀어 현경에 오른 자가 없었다. 무림의 모범이라 일컬어지는 무림맹주 정사홍도 화경이었다. 사파 최초로 사도연맹을 구축해 스스로 련주의 자리에 오른 김사인도 화경을 갓 넘긴 수준이었다. 정사홍이 환골탈태에 도달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개방 거지들이 정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퍼뜨린 헛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림맹의 카드 지출 내역에 정사홍이 필러 시술을 여러 차례 받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사홍은 단순 미용 목적일 뿐이라며 당당했지만, 사도연합은 정사홍에게 연맹원들을 다스리지 못한 책임을 지고 맹주의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결국 정사홍이 개방 거지 몇의 목을 베며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현경은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이 생을 다해 이루고자 하는 꿈의 경지였다.
반로환동(返老還童). 만독불침(萬毒不侵).
외골격과 근육을 조정해 신체를 젊게 바꾸고 만 가지 독을 분해하는 신비의 경지. 그 경지에 가장 먼저 다다랐던 이는 정과 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무림촌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스승이었다.
스승께서 현경에 오르던 첫날 밤. 스승은 아이의 모습으로 신체를 바꾸고 장수의 앞에 나타났다. 장수는 놀라 고개를 떨구었고 스승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감축드리옵니다."
"... 고맙네..."
무림은 혼탁의 시대. 정파와 사파 모두, 양민들의 뜻이라며 칼을 휘둘렀지만 무림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양민의 뜻이란 오직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만 사용된다는 사실을. 그들이 말하는 협의에 피를 흘리는 것은 굶고 있는 아이에게 빈 젖을 물리는 여인들과 세상물정 어두운 젊은 무사들 뿐이었다.
"이제 강호로 나가시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스승에게 물었다.
"..."
"..."
"..."
"이제 강호로 나가시는 겁니까?"
"허."
스승이 아이처럼 부드러워진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반로환동을 하니..."
장수가 스승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피부가 좋아졌구먼."
과연 스승의 피부는 백옥과도 같았다.
"네 스승님. 이제 하명하소서."
"허."
스승이 옷자락에 파묻힌 팔을 흔들며 말했다.
"말년에 자식복이 있다더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었던가."
"스승님, 지금 무림은 정(正)이라 자처하는 자들과 사(邪)라 손가락질받는 자들이 각기 정의를 독점하겠다며 온 천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를 간교하다 욕하며 칼질을 해대는 통에 피를 흘리는 것은 오직 젊은 무사와 아녀자들 뿐입니다. 무림이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쪼개져 가고 있습니다. 하명하소서."
"허."
스승이 천천히 허리를 숙여 뉘어있던 작대기를 손에 들었다. 장수가 스승의 손 끝을 바라보았다.
딱.
"아얏."
작대기의 끝이 장수의 머리로 내렸다. 장수는 놀라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이것이 이쪽을 베었느냐 저쪽을 베었느냐."
"스승님..."
"어찌 이 작대기로 이쪽 아니면 저쪽을 치라고 하는 것이냐."
스승이 말하였다.
"작대기는 허공을 갈랐을 뿐인데 너는 이미 누구의 목을 칠지 정해두었구나. 이쪽을 치면 저쪽이 옳다 하고 저쪽을 치면 이쪽이 옳다 할 터. 베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스승이 사라진 자리에 작대기 하나가 굴러있었다. 장수는 허리를 굽어 그 작대기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 아. 되게 춥네요. 손이 얼 것 같아요... 아 너무 춥다... 너무 추워요... ㄷㄷㄷㄷㄷ
- 일부 수정 사항이 있어 안내드립니다. 소설의 현재 시점은 장수의 1인칭 시점으로, 과거 회상 장면들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할 예정입니다. 혼동 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