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_ 벗

by 빈자루

콩.

승광이 장수의 머리통을 지팡이로 가볍게 내리쳤다.

"이놈 그새 호흡이 또 올라왔네. 계속 이러면 정말 살구나무에 매달아 놓을 것이야."

"아프다구요 사숙. 아파요."

장수가 머리통을 만지며 볼맨 소리를 냈다.

이때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방글방글 웃으며 이들을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장수의 스승이자 승광의 오랜 벗. 오온이었다.






어느새 햇살이 기울자 흐드러진 살구꽃 그림자가 뜰 전체를 덮었다. 승광이 나뭇가지에 걸린 술병을 떼어내 독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장수가 사라지고 뜰에는 승광과 오온만이 남았다. 오온은 여전히 땅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막대사탕을 핥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정말로 반로환동을 이루었어."

승광이 술기 머금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

오온은 멀리서 찾아온 벗을 보며 사탕을 핥을 뿐이었다.

"팽팽한 피부 좀 보게. 자네 정말 축하하네. 드디어 성취를 이루었군."

"..."

윤기나는 머리칼이 오온의 이마 아래로 흘렀다. 고운 머릿결을 보던 승광이 자신의 벗은 머리통을 매만졌다.

"헌데 요새 무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네. 어디서 칼부림이 나도 이상치 않은 상황이야. 무림맹과 사도연합이 세를 불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

"..."

"놈들이 찾아왔을 때 왜 일갈하질 않았는가? 자네도 참. 자넨 우유부단해서 탈이야."

오온이 사탕 핥기를 멈추고 승광을 빤히 봤다.

"그나저나 큰일이구만. 무림의 민심이 차가워지고 있어. 최근 서역의 사린국에서 자장투스트라라는 자가 종교를 창시했는데 그 종교가 무림에 빠르게 번지고 있네. 불을 숭상하는 자들이라 하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강자지존 논리가 양민들에게 먹혀들고 있어. 양민들도 정파와 사파의 혓바닥 싸움에 이력이 난 게지..."

오온이 승광의 말에 멈칫했다. 빨간 사탕을 입술에 문 채로 그가 마당 끝에 걸린 그림자를 조용히 내려보았다.

"대체 의가 먼저니 협이 먼저니. 이게 무슨 시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헛된 놈들. 헛된 놈들의 헛된 망상에 무림 전체가 놀아나고 있어."

승광이 답답하다는 듯 빈 술병을 흔들었다. 이번엔 오온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승광의 울화에 동조하듯 가라앉아 있었다.

승광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명이와 평이는 아주 잘 자라주었네. 그때 전쟁터에서 죽은 어미 품에 안긴 녀석들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녀석들이 어떻게 됐겠나. 자네가 잘 키워주었어. 고맙네 그려."

"..."

승광이 말을 계속했다.

"하긴. 명이, 평이 놈 둘 다 지 애미 애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좋을 게야. 사이가 돈독한 녀석들이니 사실을 알면 녀석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겠는가... 이 늙은 중놈은 그놈들 생각을 하면 아직도..."

오온이 승광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근데 자넨 왜 말이 없는가?"

오온이 사탕을 핥으며 승광의 눈길을 피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얘기하려다 숨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네 지금 나 운다고 흉보는 겐가? 나 이거 눈물 아닐세. 이거 그냥 눈에서 나온 물이야 물."

승광이 두 눈가를 훔치고 바쁘게 말을 이었다.

"그 마교라는 녀석들. 교리가 들어온 교역로를 역으로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양민들이 놈들 손에 놀아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이 우라질 놈의 무림맹주와 사도련주. 이럴 때 칠현 선생이라도 계셨으면..."

"음..."

오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뭔가? 뭐라도 방책이 떠오른 겐가?"

"흠..."

"뭔가? 어서 말해보게."

"...음..."

오온이 대답 대신 자신의 팽팽해진 볼데기를 건드리며 승광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골적으로 피부를 과시하는 뽄새와 달리 두 볼은 부끄러움에 달아올라 있었다.

"뭐야? 자네 지금 자기 얼굴 탱탱해졌다고 자랑하는 겐가? 이 늙은 중놈은 쭈글쭈글한데?"

오온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승광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았다.

"뭐야 내 말 맞지? 지금 나 부러워하라고 자랑하는 거 맞지?"

오온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넓게 번져있었다.

"이 음흉한 영감탱이가. 지금 무림의 앞날이 사방천지 캄캄한데 지금 나한테 피부 자랑하는 겐가?"

오온의 뺨이 다시 한번 붉게 물들었다.

"이 음흉한 영감탱이야. 너 그거 자랑하려고 반로환동했냐?"

오온이 소리없이 입을 크게 벌렸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느라 힘들구만. 벗이라고 찾아왔더니 지금 날 놀리냐?"

열이 올라 승광이 소리쳤다.

"아이구 내 팔자야. 장수야 명월아 이리 와라. 내가 그때 칠현 선생님 화두 받고 머리만 안 깎았어두... 아이구 사부님 아이구 내 팔자야."

오온이 꺼이꺼이 울고 있는 승광을 보다 갑자기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뭔가. 자네 뭔가?"

승광이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오온의 손가락이 맨들맨들한 승광의 머리통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곤 승광과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뭐야? 지금 나 머리 안 깎았어도 대머리 됐을 거라고?"

승광이 벌떡 일어섰다.

"이 음흉한 영감탱이야. 니가 강호의 오십만 민머리 동지들을 능멸해? 내 오늘 정사와 마도의 업보는 참아도 네놈 윤기 나는 머리카락은 기필코 뽑아버리리라."

오온이 웃으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어린 시절 칠현 선생에게 회초리를 맞고 있을 때 뒤에서 웃고 있던 오온의 얼굴. 중이 되기로 결심하고 머리를 깎던 날 예쁜 꾸냥을 데리고 와 자랑질 하던 오온의 미소. 그간 억눌렸던 기억들이 파편이 되어 승광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변태 영감탱이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내 어릴 적 너와 수학할 때부터 니 본성을 알아봤다. 이 영감탱이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승광이 펄쩍 뛰며 오온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오온은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 조용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

해가 지고 살구꽃 그림자가 사라질 무렵 두 늙은 벗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오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래도 와줘서 고맙네."

승광이 괜히 술병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와야지."

승광이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의 말을 들은 오온이 홍조 일은 뺨을 다시 매만졌다.

"이 영감탱이가... 2차전 가자는 말이지?"

승광의 눈썹이 다시 위로 향하였다.

오온이 뺨에서 손을 거두고 품에서 사탕을 꺼내 내밀자 승광이 말없이 사탕을 받아 들었다. 저무는 햇살 속에서 늙은 벗은 나란히 앉아 사탕을 핥았다. 그들의 뒷모습이 무림촌 앞마당에 동그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동근 그림자는 달이 뜨고 밤이 깊어도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https://youtu.be/meD9AYWb6K8


승광과 오온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는 언제라도 좋아요. 친구 만세이~~!!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 화부터는 현대시점, 장수 1인칭 시점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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