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_ 복직

by 빈자루

"이 영감탱이가... 2차전 가자는 말이지?"

승광의 눈썹이 다시 위로 향하였다.

오온이 뺨에서 손을 거두고 품에서 사탕을 꺼내 내밀자 승광이 말없이 사탕을 받아 들었다. 저무는 햇살 속에서 늙은 벗은 나란히 앉아 사탕을 핥았다. 그들의 뒷모습이 무림촌 앞마당에 동그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동근 그림자는 달이 뜨고 밤이 깊어도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설거지 언제까지 할 거야?"

설거지 통에 담긴 손등 위로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설거지 언제까지 할 거냐고?"

_맹호은림(猛虎隱林)

문득 뒤에서 살기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방어 초식을 펼쳤다.

짝.

명월이 벽력장을 연마한 적이 있던가. 셔츠 속으로 명월의 가는 손가락 자국이 붉게 새겨졌다. 기억을 잃었을 뿐 명월의 강기는 여전했다. 내가 반격할 틈도 없이 명월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뭐야 이게. 물 다 튀었네."

아닌 게 아니라 기가 폭발하며 튀어나간 물자국에 주위가 흥건했다. 운기조식이 서툴러 그런 것뿐이지만 대가는 참혹했다. 명월의 손에 들린 걸레를 빼앗아 얼른 바닥의 물기를 훔쳤다. 등짝이 얼얼했지만 어느새 기 폭발을 할 정도로 내력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이제 몇 달만 더 쉰다면 비급도 완성하고 스승과 명월의 원수도 갚을 수 있을 듯 했다.

"라면 다 떨어졌어."

_맹호은림(猛虎隱林)

내력이 회복된 것은 좋았지만 명월의 강기와 부딪힐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방어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명월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은 정말로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인을 풀며 내가 대답했다.

"라면을 다시 사야 한다?"

명월이 쥐고 있는 국자에서 검기가 흘러나왔다. 명월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듯했지만 나의 예민해진 기는 그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_궁신탄영(弓身彈影)

몸을 활처럼 구부리며 빠르게 뒤로 물러설 자세를 취하였다.

"뭐? 라면을 다시 사?"

분명 몸을 피했지만 명월의 손에서 떠난 국자는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더니 이미 내 이마에 닿아있었다.

'이것은 이기어검(以氣馭劍)?'

어찌 된 일인지 기억을 잃었음에도 명월의 내공이 집에서 쉬는 나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칼을 낼 마음이 없는데도 이미 칼이 나와 있었다. 과연 사무사(思無邪)하지 않은가.'

그녀는 기를 운용한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그저 라면이 떨어졌다는 사실에 깊이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 나한테 전화왔어. 너 언제 복직하냬."

복직이라는 단어가 이마에 닿은 국자의 감촉보다 차가웠다.

"복직?"

"전화는 왜 안받아? 이번 주 넘기면 무단퇴사 처리한대. 너 무단 처리되면 퇴직금 못 받는 거 알아 몰라?"

"퇴직금을 왜 못받아. 그런 회사가 어디있어?"

"그래서. 복직을 안하겠다고?"

명월의 서늘한 기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아니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럼 뭐."

분명 가녀린 여인이었는데. 지금 명월은 태산보다 거대했다.

"아니..."

"아니 뭐."

분기탱천. 그녀의 기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 정장 다려놓은 게 없는데 어떡하지?"

명월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너 라면에 수프 발라지듯 생으로 발라지고 싶냐?"

"지금 다릴게..."

명월이 콧방귀를 뀌며 국자를 거두자 주방을 메웠던 살기가 한순간에 흩어졌다. 나는 싱크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저기."

내가 말하자 명월이 뒤를 돌았다.

"저기 뭐?"

"저기 내가 복직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알지?"

명월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지, 자기야. 자기가 얼마나 회사 가고 싶어했는데."

이제 남은 기간은 단 엿새. 비급의 완성도 스승의 복수도. 아무것도 나는 이루지 못했다.






https://youtu.be/LBIPAtO2lQQ


시점과 인칭이 현재 시점과 1인칭으로 건너오는 회차입니다. 읽으시는 분들이 헷갈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네요. 앞서 2화에서 장수가 설거지를 하다가 기폭발을 하던 시점에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어느덧 새해가 되었네요. 나는 소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이어입니다. 날이 춥네용. 좋은 하루 보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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