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내가 말하자 명월이 뒤를 돌았다.
"저기 뭐?"
"저기 내가 복직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알지?"
명월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지, 자기야. 자기가 얼마나 회사 가고 싶어했는데."
이제 남은 기간은 단 엿새. 비급의 완성도 스승의 복수도. 아무것도 나는 이루지 못했다.
비급의 완성을 염탐하려는 마교의 공작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처음에는 유튜브 쇼츠나 미장 강세로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더니 최근에는 보험 가입과 대출 전화로 동태를 살폈다. 급기야 지난 주에는 카드 배달원으로 위장한 마교 공작원이 서재까지 난입하는 걸 표범같이 막아섰음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까스로 쓰고 있는 비급을 놈들에게 넘겨 줄 뻔 했다.
"나 운동 갔다 온다."
명월이 현관을 나서며 말했다.
"그래 자기야 있다가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현관문 앞으로 달려가 명월에게 물었다.
"없어. 소소 일어나기 전에 옷이나 다려놔."
명월이 나갔다. 나는 마루바닥에 귀를 대고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서재로 돌진했다.
_건곤대나이심(乾坤大那異心)
건곤대나이심(乾坤大那異心)
무릎을 꿇고 되뇌였지만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속으로 말했다.
_건곤대나이심(乾坤大那異心)
건곤대나이심(乾坤大那異心)
역시 조용했다. 큰일이다. 스승께서 전수해 주신 심법을 활용해도 더 이상 초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커다란 기운이 있어 마음으로 그것을 부리나니. 건곤대나이심.'
아, 삼발이.
아까 설거지하고 행주를 가스레인지 위에 그냥 접어 놓은 것이 떠올랐다. 젖은 행주를 열기가 남은 삼발이 위에 펼쳐야 살균효과도 좋고 빨리 말랐다. 나는 주방으로 돌진했다. 젖은 행주가 쇠붙이에 닿자 칙 소리를 내며 증기가 올랐다.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시 서재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_건곤대나이심(乾坤大那異心)
건곤대나이심(乾坤大那異心)
손가락을 폈더니 검지 두번째 마디가 갈라져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느라고 꼈지만 주부습진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안방으로 달려가 상처 위에 마데카솔을 곱게 발랐다. 방에서 나오며 소소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암막 커튼을 치고 문을 살살 닫았다. 소소가 깨지 않았다.
다시.
'하늘과 땅 사이에 커다란 기운이 있어 마음으로 그것을 부리나니. 부정함은 사라지고 어긋남은 잡히리라.'
"아빠."
소소였다.
노란 잠옷을 입은 아이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빠 뭐 해?"
소소가 무릎에 올라앉으며 물었다. 아이가 위를 보고 턱에 솟은 수염을 매만졌다.
"어? 아빠 양복 다려야 하는데."
"그럼 나랑 소꼽놀이 하자."
"어? 아빠 양복 다리고."
"그래? 그럼 나랑 소꼽놀이 하자."
아이가 말했다.
"어?"
"응. 소꼽놀이."
잠시 고민을 하다 아이를 바닥에 앉히고 소소의 눈을 보며 말했다.
"잘들어 소소야. 아빠는 사실 비급을 완성해야 해. 비급을 완성해야 마교도 무찌르고 스승님 복수도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마교가 무림의 기를 혼탁하게 했거든. 그래서 아빠가 비급을 완성해서 무림의 기를 정순하게 해야해."
아이가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했다.
"응. 그러니까 소꼽놀이 하자."
아이가 내 눈을 빤히 들여 보며 말했다.
소소...
아이의 눈은 맑고 깊었다. 나는 어렵게 신형을 일으켰다.
"그래... 소꼽놀이 하자."
"예에. 아빠 최고. 아빠 최고."
소소가 동그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나는 소소의 손에 붙잡혀 조그마한 찻잔과 인형들이 늘어진 방으로 끌려갔다. 이제 남은 기간은 단 엿새. 커다란 손에서 쥐고 있던 작은 그릇들이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 떨어졌다.
조평 형님...
이럴 때 조평 형님만 계셨더라도...
플라스틱 햄버거를 먹으라는 소소 앞에서 그렇게 나는 속절없이 조평 형님만을 그리게 되는 것이었다.
전편에서 복직까지 남은 기간을 나흘로 표현했는데, 생각해보니 설거지를 하는 회차가 일요일이라 복직까지 남은 기간을 엿새로 고쳤습니다. 혼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고향에 내려와 있어 업데이트가 원할하지 않네요. 주말 잘 쉬시고 다음주부터 또 화이팅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새해 복 마안이 받으세용~~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