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_ 나는 약한 남자는 좋아하지 않아

by 빈자루

"벨 마음 없이 베었지."

"그게 무슨 소린가요. 아무튼 허공에 막대기 질 하는 것은 자신이 있습니다. 매일 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런 건 일도 아니지요."

"좋다. 그럼 이 시간대에 이곳에서 다시 보자꾸나."

"예."

장수가 지게를 지고 길을 나섰다. 마을 어귀쯤을 지날 때 뒤에서 칼을 내리는 조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먼 곳에서도 그의 칼이 베이지 않는 것을 베는 것이 느껴졌다.

싱긋.

아까 보았던 조평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날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시시때때로 낮에 보았던 조평의 웃음을 떠올리며, 칼을 위에서 아래로, 칼을 위에서 아래로,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음날 장수는 조평과 약속한 곳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조평을 기다리며 지겟대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기를 반복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베던 조평의 칼이 떠올랐다. 자신의 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너희 아부지는 개를 죽이신다매? 그래서 살구래지?"

명월이었다. 근처 개울가 벌판에서 여러 명의 소년들이 명월을 둘러싸고 희롱하고 있었다.

"우리 아부지가 왜 살구야? 우리 아부진 무인이라구. 우리 아부지 검술이 얼마나 훌륭한데."

명월이 외쳤다.

"개를 죽이니까 살구래지. 명월이 아부진 계집애 같다. 말을 걸어도 얼굴만 붉히고 도망을 간다. 개를 잡고선 도망을 간다."



족제비같이 생긴 녀석이 뚱보의 앞으로 기어 나와 개가 짖는 시늉을 했다. 명월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뚱보가 그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그 꼴을 보았다. 족제비와 뚱보 주위를 빙 두른 동네 아이들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명월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눈가엔 물이 차 있었지만 여기서 울음을 터뜨리면 소년들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돼버릴까 봐 악착같이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명월이 떨림을 참고 소년들에게 대거리를 하러 나서려는 찰나.

빡.

장수였다.

장수가 나뭇짐을 팽개치고 득달같이 달려가 뚱보의 얼굴을 받았다.

악.

뚱보가 쓰러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그가 쥐어 싼 코에서 피가 흘러 턱밑을 흥건히 적셨다.

"이 새끼 너 뭐야."

뚱보가 외쳤다.

"너네들 뭐라고 했어. 너네가 명월이 울렸어?"

장수가 주위를 두른 사내아이들을 보며 소리쳤다. 아이들이 장수의 기세에 눌려 조용해졌다.

족제비 같이 생긴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야 이장수. 니가 뭔대 나서냐. 니가 명월이 신랑이라도 되냐?"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장수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곤 뒤에 있는 명월을 몸으로 가리며 말했다.

"그래. 나 명월이 신랑 할 거다."

장수가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니까 내 색시 건드리지 마."

장수가 소년들을 노려보았다. 장수의 태도에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야 가자. 미친놈이다."

아이들이 빠지자 뚱보가 씩씩거리며 장수를 노려보다가 뒷걸음 치며 아이들을 따라갔다.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밭 쪽으로 사라졌다. 뚱보가 소리쳤다.

"너 반드시 내가 복수한다."

장수가 끝까지 그쪽을 보다가 시야에서 무리가 사라지자 명월에게 몸을 돌렸다.

"괜찮아?"

장수가 명월의 어깨를 감쌌다.

"야 이장수. 너 방금 뭐라고 했냐?"

명월이 말했다. 장수가 명월의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얼른 거두었다. 조금 전까지 위풍당당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야 이장수. 너 뭐라고 했냐니깐?"

명월이 물었다.

"아니 그게."

장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명월의 눈치를 살폈다. 명월이 눈을 칼날처럼 길게 뜨고 장수의 달아오른 얼굴을 훑었다. 명월이 말했다.

"누가 네 색시야? 네가 왜 내 신랑이고?"

명월이 다가오며 묻자 장수가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니 걔들이 자꾸 너한테 못된 말을 하니까..."

장수가 입술을 달싹이며 시선을 발등으로 내리깔았다.

"그래서 뭐?"

명월이 물었다.

"나도 모르게 헛나온 거야."

장수의 귀 끝이 명월의 눈동자보다 붉게 타올랐다.

"헛나와?"

명월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장수에게 다가섰다.

"그럼 내 신랑 하기 싫다는 거네?"

"아니, 그게 아니고."

장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럼 뭐?"

명월이 물었다.

"하고 싶어. 하고 싶다고."

장수가 크게 대답했다. 그리곤 아차, 급히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명월이 멍하니 장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시켜준대?"

명월이 쏘아붙였지만 이미 귓불은 장수만큼이나 붉어져 있었다.

"나 먼저 간다."

명월이 쌩하니 산길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명월아 같이 가."

장수가 팽개쳐두었던 나뭇짐을 급히 짊어졌다. 지게가 덜컹거렸지만 장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월의 뒤를 쫓았다. 산비탈을 내려가던 명월이 별안간 뒤를 돌며 말했다.

"나는 약한 남자는 좋아하지 않아."

명월이 얼굴을 잠시 붉히고 비탈을 빠르게 달렸다. 장수가 그 뒤를 쫓으며 입에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앞 선 명월의 저고리 자락이 나비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https://youtu.be/yX3_xiwqCoQ


장수가 부럽네요... 나도 저런 고백 한번만 받아봤으면 좋겠네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ㅎㅎㅎㅎ

keyword
이전 12화10화 _ 벨 마음 없이 베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