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
칼이 날아오다 장수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칼 끝에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전율이 마디 곳곳으로 전해졌다. 등 뒤의 척추기둥. 오금과 허리 언저리. 배꼽 아래와 발가락 마디 끝까지. 구석구석이 저릿했다. 장수가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붉은 얼굴이 칼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가와 귀에 대고 말했다.
"애송이구나."
그날 밤 장수는 이불도 덮지 못한 채 앓듯이 누웠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눈을 감아도 붉은 얼굴의 검 끝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열이 내리지 않은 채 며칠을 흐느적거렸다.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습관처럼 들르던 명월의 집 마당도 일부러 먼 길로 돌아다녔다. 조평과 명월의 모습이 보일까 겁이 났다.
부웅.
사람이 눈에 띄지 않을 시간이면 몰래 지겟대를 손에 올렸다.
부웅.
지겟대를 손에 쥔 장수의 손에서 피가 났다. 소리가 달랐다. 장수의 지겟대에서 나오는 소리는 붉은 얼굴의 그것과 달랐다.
'이 소리가 아닌데...'
다시 한번 지겟대의 끝을 올렸다가 아래로 내렸다. 짓이겨진 손바닥에서 고름이 새어 나왔다.
부웅.
'이게 아니야...'
애송이.
붉은 얼굴의 한 마디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두려움과 공포. 하지만 그 너머에 다른 감정이 있었다. 강해지고 싶다. 열망이었다. 붉은 얼굴이 떠오를수록 장수는 더욱 세게 지겟대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칼 끝이 무뎌지고 둔탁해졌다.
"그간 왜 오지를 않았느냐?"
조평이었다. 조평이 나무짐을 하러 가는 장수의 뒤에서 그를 불러 세웠다. 장수가 조평의 앞에 가 섰다. 장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보거라."
장수의 안색을 살피던 조평이 말했다.
장수가 고민하더니 지겟대를 옮겨 잡고 바른손을 내밀었다. 조평이 장수의 손바닥을 살폈다.
"피가 고였구나. 다른 손도 보이거라."
장수가 반대손을 조평에게 보였다. 조평이 장수의 손바닥을 만졌다.
"고름 위에 고름이 잡혀있구나. 이 손으로는 칼을 잡지 말거라."
장수가 말했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장수가 고개를 떨궜다. 조평의 손이 닿은 상처가 화끈거렸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자신의 칼에서 나는 소리가 붉은 얼굴의 것과 같지 않는지. 그 사실이 장수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놈은 붕_ 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휘두르면 소리가 달라요. 아무리 세게 휘둘러도 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장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패배의 슬픔이라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조평이 장수의 짓물린 손바닥을 놓은 채 묵묵히 그 소리를 들었다.
"강해지고 싶느냐."
조평이 물었다.
"예."
장수가 대답했다.
"강해진다는 것은 무엇이냐."
조평이 물었다.
"상대에게 지지 않는 것이요."
"그렇다면 강한 자는 세상천지에 하나뿐인 것이냐."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평이 이어 물었다.
"왜 강해지고 싶은 게냐."
붉은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약한 남자는 싫다던 명월의 삐죽한 말투도. 묵묵히 나뭇짐을 하러 들어가던 막막한 산중도. 하지만 조평의 물음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조평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장수의 손에 들린 지겟대를 가져오며 말했다.
"좋다. 왜 강해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하거라. 하지만 잊어서는 되지 않는다. 왜 강하고 싶은지."
"예 사형."
조평이 흐뭇하게 장수를 바라보았다.
조평이 말했다.
"너 지금 사형이라고 불렀느냐."
조평이 예의 그 웃음을 띠었다.
싱긋.
조평의 웃음을 본 장수는 다시 조평을 사형이라 부르고 싶어졌다.
"예 사형."
다시. 장수가 말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장수의 말은 들은 조평이 잔잔하게 웃으며 장수의 눈길이 닿는 곳을 쓸었다.
"알겠습니다 사제."
살구꽃이 봄바람에 일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말은 언제나 가슴을 들뜨게 합니다. 강해지고 싶은가봐요.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