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사형이라고 불렀느냐."
조평이 예의 그 웃음을 띠었다.
싱긋.
조평의 웃음을 본 장수는 다시 조평을 사형이라 부르고 싶어졌다.
"예 사형."
다시. 장수가 말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장수의 말은 들은 조평이 잔잔하게 웃으며 장수의 눈길이 닿는 곳을 쓸었다.
"알겠습니다 사제."
살구꽃이 봄바람에 일었다.
다음날부터 장수는 살구나무 꽃이 크게 있는 오온의 집 마당으로 새벽과 저녁, 하루 두번 걸음을 옮겼다. 집 마당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장수를 보고 명월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새침하게 한 마디를 뱉을 뿐이었다.
"한번 보지요 뭐 오라버니."
그런 명월을 보고 조평이 싱긋 웃었다.
오온이 직접 장수를 지도하는 일은 드물었다. 칼을 가르치고 있는 조평과 장수의 모습을 가끔 멀리서 말없이 바라 볼 뿐이었다. 하지만 장수도 그를 스승이라 불렀다. 조평이 오온에게 "스승님." 이라 칭을 하면 장수도 조평을 따라 칭을 했다. 그러면 오온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다가 짐짓 딴청을 부리기도 하고 멀리 있는 산등성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가르치진 않았지만 장수는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장수는 오온의 제자가 되었다.
장수의 사형으로 열심인 것은 오히려 양명이었다. 양명은 조평과 다르게 표현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생각하지 마라. 네 몸이 나무 지게인 줄 아느냐? 왜 이리 뻣뻣해. 넌 죽은 나무가 아니야. 살아있는 칼이라고. 칼처럼 움직여."
장수가 붉은 얼굴에게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이미 분개하고 있었다.
"한번 더 그 따위로 칼질을 할 생각이면 나한테 먼저 팔다리가 댕강 썰려 나갈 줄 알아라."
수련은 반복의 연속이었다. 칼을 잡고 칼을 올리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장수의 것은 양명과 조평의 것에 미치지 못했다. 아니 양명과 조평은 커녕 붉은 얼굴의 것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럴수록 장수는 더욱 세게 칼을 쥐었다. 그럴수록 고름은 패이고 상박과 하박엔 힘이 들었다.
"흥."
그런 장수를 보고 명월이 스쳐갔다. 연분홍 치맛자락이 바람에 팔랑였다.
부웅.
소리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좋아지지 않았다. 전보다 둔해진 소리가 장수를 괴롭혔다. 굵은 땀방울이 이마 위에서 흘렀다.
"멍청한 놈."
양명이었다. 그가 나타나 장수가 쥔 막대기의 끝을 검지로 눌렀다. 잔뜩 힘을 주고 있었음에도 막대기가 볼품없이 흔들거렸다.
"너는 나무를 팰 때도 이렇게 잔뜩 긴장을 하느냐?"
양명이 물었다.
무뚝뚝하고 화가 난 얼굴이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자꾸. 칼을 들면 힘이 들어갑니다."
"멍청한 놈. 니가 칼을 들려고 하니까 힘이 들어가지."
양명이 말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수가 놀라 물었다.
"이 놈 보게. 칼을 들려고 하니까 힘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칼을 올려야지. 왜 들려고 하느냔 말이다."
양명이 이어 말했다.
"파를 썰고 글을 쓸 때 처럼 칼을 올려놓으란 말이다. 너는 부엌칼을 들고도 어쩌지 못해 쩔쩔매느냐?"
장수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 보았다. 생각하지 못했었다. 장수에게 칼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쇳덩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께서 쥐신 칼이나 선비가 쥔 붓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멍해진 장수의 표정을 읽고 양명이 말했다.
"칼을 들지 말고 올려라. 내가 꼭 계집애처럼 세세히 말을 해야 알겠느냐. 거참 조평 녀석이 손 많이 가는 놈을 달고 왔네."
양명이 큰 턱을 주억거렸다.
하지만 장수는 들지 말고 올리란 말이 당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게는 어깨로 '드는' 것이고 도끼는 손귀로 '잡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장수에게 양명의 말은 물 위를 걸으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사형. 어찌 칼을 들지 않고 올립니까. 드는 것과 올리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허참. 이놈 고집도 세네."
양명이 장수의 손에 들린 칼을 쑥 뽑았다.
"이놈아. 이렇게 칼을 올리라고. 방금 니가 쥐었던 것 처럼."
장수의 손에서 뽑혀져 나간 칼이 마당 구석에서 달캉거렸다. 장수는 칼이 아직도 손에 올려 있는 듯 했다.
"흠. 손의 모양은 잡혔구만."
양명이 장수의 손 모양을 보며 말했다.
"이제 그렇게 쳐 보거라."
양명이 이어 말했다.
장수가 양명이 시키는 대로 빈손을 허공에 들어 빈손을 허공에 던졌다.
"흠."
양명이 말했다.
"됐다."
양명이 사라졌다.
장수의 손에는 아직 양명의 손에 뽑혀 나간 칼의 무게가 올려 있는 듯 했다.
베가본드 36권인가에서는 무사시가 정말 동네 부녀자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 나와요. 악귀였던 무사시가 다리 부상을 당하고 빈농에 들어가 굶어죽겠 생긴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살려달라고 영주에게 비는 장면이 정말 압권이었어요. 생전 남을 가르쳐 본적이 없는 무사시가 아녀자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면서 칼이 없는 것 처럼 칼을 들라고 중얼중얼 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여인분이 정말 무사시 말대로 하니까 칼이 쑥 날아가요. 그걸 보고 무사시는 놀라며 좋아해요.
실제로 검도수련을 할때 칼을 쥐지 않고 빈손으로 허공을 치는 연습을 합니다.
이게 아주 도움이 많이 됩니다.
검도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칼을 쥐는 것 하나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이렇게도 쥐어 보고 저렇게도 쥐어보고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원리인 것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원리인 것 같고. 물론. 계속해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요새는 양손의 새끼 손가락의 원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어릴 때 봤던 캠퍼스러브파이터라는 만화책에서 사부가 새끼 손가락만 단련시키는 장면이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같아요. ㅋ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네요.
산다는 건 결국에 칼의 무게를 지우는 일.
글의 무게를 지우는 일.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놀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