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는 말일세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머 워라벨 그런 거는 상상도 못 했네. 나만 쳐다보는 자식들 눈깔이 줄줄이 굴비인데 힐링하고 그런거 어딜 바라나. 자넨 복 받은 걸세. 요새 젊은이들은 고마운 줄을 몰라."
고막에서 피가 흐르고 달팽이관의 림프액이 흔들렸다.
"쉬엄쉬엄 하게. 틈틈이 자기 계발도 하고."
"존명."
"자네가 이 나라의 기둥 아니겠나."
"존명."
"소설은 완성되는 대로 가져 오고."
"존명."
"내일부터 일 시작하게. 자리는 만들어 두었네."
문을 열고 나오자 2년 만에 마주하는 본사의 바람이 폐를 찔렀다. 다시 시작이다.
내 이름은 이장수. 1984년생. 서울 마포구에 거주한다. 내 직업은 소설가, 아니 무사이다. 나는 대륭산업에 다닌다. 대륭은 무림의 부를 거머쥐고 있다. 무림맹과 사도연합을 뒤로 움직이는 것 역시 그들이다. 스승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상대에게 기꺼이 머리를 내어주는 칼을 쓰라고. 나는 오늘도 그 알 수 없는 말을 새기며 대륭으로 출근을 한다.
익숙한 예의. 익숙한 친절. 익숙한 문법.
사람들은 묻는다. 2년 동안 쉬면서 무얼 했느냐고.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글을 조금 썼을 뿐이라고. 그러면 그들은 다시 묻는다. 무슨 글을 썼으며 그동안 쓴 글은 어디 있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대리. 그러지 말고 보여줘. 뭘 그리 숨겨. 보고 놀리지 않을게. 좀 보자."
팀장 오소리. 팀장은 머리가 벗겨진 사내이다. 반사와 토스. 토스와 반사. 불리한 상황을 빠져나가는 것이 흡사 꿀 바른 오소리가 굴을 파고드는 것과 유사하다. 지난번 팀장의 지시로 배달했던 돈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을 때도 그랬고 무림맹과 사도연합으로부터 불편한 전화가 걸려올 때도 그랬다.
유서보(柔鼠步).
그의 걷는 폼은 흡사 너구리나 쥐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러게요. 팀장님. 이대리가 너무 빼네요."
정미인 차장. 술계와 술책의 달인. 속을 알 수 없는 그녀의 화장술은 그녀의 계산 만큼이나 복잡하다. 갖은 중상모략으로 이십년 넘게 팀의 이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중유독(花中有毒).
그녀의 모함과 이간질로 독상을 입은 무림 인구가 이미 수천을 넘는다.
"헤헤. 이대리님. 요새 누가 소설을 봐요. 숏폼으로 5분 만에 결말까지 다 알려주는 세상인데."
주임 나민지.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를 안 보는 건지 선배들의 모든 공격을 방어한다. 그녀의 반탄력(反彈力)은 가히 대륭산업에서 신입직원으로 살아남을만 하다.
대륭산업 후진사업부 3팀.
이곳이 내가 복직한 자리이다. 무엇을 팔고 무엇을 기획하는지 모를 이 부서로 회장이 나를 발령냈다. 사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독공을 지닌 괴수들 틈으로. 회장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의중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자자. 왜 이리 소란스러워요. 업무시간에 뭐하는 겁니까. 다들 자리로 돌아가세요."
박부장이었다.
부장 박태산. 대륭산업 선대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사내. 대륭산업이 무림을 지배하기까지 온갖 더러운 일과 비밀스러운 일들은 그의 손을 모두 거쳤다. 대륭의 사냥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집요함과 회장에 대한 충성심으로 저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무실에 떠다니던 난잡한 초식들이 땅 속으로 사그러들었다. 태산신공(泰山神功). 그의 압도적인 기세 앞에 혀를 먼저 내민건 오팀장이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안그래도 제가 팀원들에게 주의를 주던 참이었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오팀장이 부장의 공력을 튕겼다.
튕겨진 공력이 정차장에게 들이치려 하고 있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장수씨. 장수씨 때문에 나 부장님께 보고드릴 꺼 못 드리고 있잖아. 어떡할꺼야."
정차장이 나를 낚았다.
어...?
부장의 신공이 나에게 쏠리고 있었다. 아래로 몸이 낙하하는 순간 도와 줄 사람이 없나 주위를 둘렀다.
이런.
이미 나주임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외부와의 연을 끊고 있었다.
흑.
단발마의 신음이 명치를 타고 올라왔다.
부장의 신공이 나를 위에서 겁박하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부장의 눈이 나를 노렸다. 그의 살의가 전신을 타고 전해졌다.
허윽.
나는 책상의 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티었다.
부장이 공력을 거두었다.
"자. 다들 앉아요. 이번에 새로 부임한 주과장을 소개합니다. 주과장은 기획실에서 모셔온 인재에요. 주과장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다들 협조하도록."
날선 기운이 복도를 따라 들어왔다.
나는 주과장을 보았다.
붉은 기운이 흐르는 혈색. 날카로운 눈빛과 비틀려 올라 간 입꼬리.
맙소사.
명월을 위해 무림촌의 졸개들과 부딪쳤던 날, 사당나무 아래서 내게 패를 주었던 풋나기 청년.
붉은 얼굴이었다.
그가 나를 힐긋 보더니 말을 걸었다.
"잘 지냈나? 애송이?"
1화에서 20화까지의 요약입니다.
업데이트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원래 장수의 직급이 차장이었는데, 차장이 너무 높은 것 같아서 대리로 수정했어요. 84년생이면 대리는 너무 낮은 것 같기도 한데, 그냥 만년 대리로 이해해주시고 읽어주세요.
지금까지의 스토리가 이해안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1화부터 20화까지의 요약본도 함께 올려드립니다.
날이 많이 춥네요. 어서 날이 풀렸으면 좋겠어요. 손이 시려요 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당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