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랏사이 마세!"
비로소 손님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숙이던 형님의 수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 길로 수첩을 꺼내 글을 적기 시작했다.
<무림은 본디 하나였다... 중략... 상대에게 기꺼이 머리를 내어주는 칼이란... 중략... 무림은 정파와 사파로 나뉘고... 중략... 스승 오온은 반로환동하였다... 중략... 따라서 상대에게 머리를 내어주는 칼이란... 중략... 상대에게 머리를 내어주는 칼이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잠에서 깨인 듯 했다.
흔들리는 밤을 보낸 후였다.
아침이었다.
*
"야! 이장수! 회사가! 언제까지 자!"
명월이었다.
명월이 사자후를 익힌 적이 있던가. 명월의 사자후가 내이를 때렸다. 평소의 나였다면 명월의 이런 공격에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 찼을 것이다.
낑낑대고 짜증내며, 알아, 안다고, 갈거라고, 고만 좀 하라고, 라며 버럭 화를 내거나,
쿵쿵쿵쿵 일부러 발을 쿵쿵 세게 디디며 화장실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비급을 깨달은 몸.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달랐다.
"하암 잘 잤다. 자기 잘 잤어? 굳 모닝."
명월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마치.
외양간에서 오줌 갈기는 개를 본 고양이의 표정이었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어 소소. 해브어 나이스 데이."
소소가 뭐지 이 인간.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마치.
핫도그에서 소시지만 빼먹고 빵튀김만 남겼는데, 그걸 괜찮다고, 자긴 빵튀김만 먹어도 된다고 얘기하는 친구를 볼 때의 표정이었다.
"여기 앉으시죠."
지하철에서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여자가 자리에 앉았다.
마치.
치한인 줄 알고 빠르게 걸었는데 알고 보니 겸손한 신사가 무서워하지 말라고 휘파람을 부르며 따라와 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숙녀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싱큿. 윙크를 했다.
그녀가 주화입마에 빠졌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사랑합니다."
나주임과 주과장이 나를 봤다.
이 새낀 뭐야, 라는 표정으로 그들이 나를 봤고 나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예의 그 윙크를 날렸다.
그들 역시 입마에 빠졌다.
흣.
나는 가볍게 자리에 앉았다.
"장수씨. 밑에 가서 프린트 좀 갖다 줄 수 있어? 나 발목이 부어서."
정미인이었다.
"비앙 쉬르, 벨 마담므."
"장수씨 나 아직 결혼 안했는데."
정미인이 수정 테이프를 바닥에 떨구었다.
"결혼 여부가 중요한가요. 당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정미인의 턱이 벌어졌다. 정미인의 입에서 물이 쏟아졌다. 나는 다시 한번 싱큿. 윙크를 날렸다.
"이봐. 장수씨. 왜 그래 아침부터. 뭐 투자한 거 대박났구나. 뭔대? 나도 좀 알려줘."
오소리 팀장이었다.
내가 싱긋 웃었다.
"대박이 낫습니다 팀장님. 인생이란. 거대한 블루칩에서요."
오팀장이 두번째 물을 쏟았다.
나는 당당하게 걸었다.
당당하게 걸어 부장실로 직행했다.
"넉 넉 넉."
부장의 방문을 두드리며 내가 입으로 말했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나는 안으로 신형을 밀었다. 나는 이제 자신있었다. 나는 천하무적이니까.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누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