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흐. 멍청한 녀석. 역시 손 쉽군. 너같은 녀석들을 요리하는 것이 가장 쉽지. 자, 이제 잠들거라."
이여적이 말했다.
흐느적. 흘러내리는 신형을 감으며 이여적의 꼬리가 내 목을 죄었다.
커흑.
피가 흘렀다.
나를 옥죄는 놈의 몸뚱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득하게.
나는 아득히.
침잠하고 있었다.
*
"소소야!"
"아빠!"
"소소야 어디갔었어! 아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내가 말했다.
"소소야!"
명월이 달려왔다.
"엄마!"
소소가 명월을 안았다.
나는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끌어 안았다.
내가.
보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보호받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나를 구했다.
*
"..."
"죽음을 받아들여라. 이장수."
까득.
목뼈 뒤틀리는 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구경꾼들의 고함이 일시에 멈췄다.
이여적이 비늘을 천천히 움직여 나의 맡에 똬리를 틀었다.
이여적이 칼을 크게 들었다.
칼이.
슥.
악.
이여적이 입을 훔쳤다. 흥건히 피가 흘렀다.
"악. 어뜨케... 어뜨케..."
이여적이 황급히 뒤를 물렀다.
말을 할 때 반쯤 잘린 그의 혀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혀가 말려 들지 않게 그는 손으로 혀를 쥐었다.
"악. 어찌. 너는 어찌..."
이여적이 손을 입에 넣고 말했다.
쨍.
나는 늑태도에 묻은 피를 뿌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이여적의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여적이 뒷걸음질 쳤다.
"어찌. 이 어찌."
내가 말했다.
"내가 지키는 것이."
늑태도가 울었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었어."
나는 늑태도를 달랬다.
"내가 그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야."
"..."
"그들이 나를 지키는 것이지."
늑태도가 이여적을 베었다.
이여적의 몸이 위에서 아래로 한숨에 나뉘었다.
이여적이 사지를 떨었다.
_ 너도. 똑같아. 잰 척하지 말라고.
붉은 피가 이여적의 정수리에서 솟구쳤다.
나는 늑태도를 뿌려 날에 맺힌 피를 털었다.
늑태도가 징징 울었다.
_ 악. 그만. 그만.
이여적이 흐물히 녹으며 외쳤다.
_ 그 칼을 치워. 그 칼을 어서 치워.
이여적이 눈을 가렸다.
늑태도의 투명한 날에 이여적의 몰골이 비쳤다.
_ 악. 그만. 그만.
이여적이 녹아내렸다.
더러운 피 위로 이여적의 형체가 흘렀다.
나는 칼을 숨기지 않았다. 칼 날 속에 이여적이 몸부림쳤다.
썩.
비명이 더는 없었다.
마침내.
이여적이 녹아 사라졌다.
와_
"1라운드. 이대리 승!"
인사과장이 외치자 장내가 함성으로 요란하였다.
"결국 다른 이들의 흉엔 예민하면서."
정미인이 말했다.
"자신의 흉이 비쳐지는 건 견디지 못하였군요."
"열등감이 많을 수록 자신을 숨기려 하는 법이지. 이여적은 남을 흉보며 자신을 숨기려 했던 거야. 그 술법에 많은 이들이 당했지."
오팀장이 정미인의 말을 받았다.
"세치 혀를 옳은 곳에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군요."
정미인이 말했다.
"그걸 아는 놈이었다면 애초 이여적이 아니었지."
오팀장이 대꾸했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다음 상대는 더 한 놈이야."
연무장 맞은편에선 공기가 서늘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늑태도를 진정시켰다. 연무장의 건너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조금 잔인한 부분이네요. 흑흑.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