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_ 기생문

by 빈자루

"알비노는 존재 자체가 모순이었어. 본인이 가진 건 달칵질과 짬 밖에 없는데 그걸 받쳐줄 동료들이 없다면 그는 독 없는 나방 같은 존재지."

오팀장이 말했다.

"장수씨가 이번 기회를 통해 가족과 생계의 의미를 되짚을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정미인이 말했다.

"그렇지. 돈은 수단일 뿐이야. 정말 중요한 건 행복이지."


2라운드가 지나고 있었다.

알비노가 부숴진 너머로.


웅얼웅얼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3 라운드가 곧 이었다.






흐아아. 꿈적꿈적. 흐아아. 꿈적꿈적.

정미인의 시선이 적의 출입구 쪽으로 던져졌다.

흐아아 쿰척쿰척. 흐아아 쿰척쿰척.

거대한 녹색 괴물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며 기어오고 있었다.

쿠훅쿠훅 쿰척쿰척. 쿠후쿠훅 쿰척쿰척.

"이럴수가... 기생문이에요... 기생문은 지금까지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장수씨. 이제 그만해요!"

정미인이 외쳤다.

"안돼!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이런, 기생문이라니... 대륭의 수뇌부 놈들. 기생문을 승진대회에 내보내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오팀장이었다.

"헉. 대리님. 안돼요. 더는 버틸 수 없어요. 도망치세요!"

나주임이 외쳤다.


"삼... 삼 라운드... 악! 악취를 견딜 수가 없어. 파이트."

인사과장이 말하고 황급히 라운드를 내려갔다.

기생문이 쿰적칠을 하며 연무장을 기어 나왔다.

놈의 낯이 웃을 때마다 공기가 썩었고 썩은 공기에서 곰팡이가 피어 흘렀다. 놈은 살아있는 부패. 그 잡채였다.



*

기생문은 본디 선량한 양반 집안의 남식이었다. 명망가의 독손으로 태어나 부귀와 영화를 한몸에 누릴 운명이었다. 미모는 천녀를 닮았고 총명함은 훈장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허나 하늘은 그에게 고운 심성을 주지는 못하였다.

"너 내가 딱지치기 가르쳐 줬다. 양주 사라."

놀랍게도 그는 이미 십 세에 술을 알았다. 동네 동무들에게 딱지를 가르쳐준 대가로 그가 요구한 것은 양주였다. 십 세 주제에. 술을 마시는 그를 동무들이 좋게 볼 리 없었다. 그는 점점 혼자가 되었고 그럴 수록 천방지축 굴었다.

"꺄하하하. 너 구슬 다 내꺼. 너 딱지도 다 내꺼. 너거 속옷도 다 내꺼. 니꺼는 다 내꺼. 꺄하하하하."

많은 것을 가진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놈은 남이 가진 것에 심통을 부렸다. 집안 어른들도 놈의 욕심을 그저 귀한 독자의 어리광으로 치부해 탓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뿔싸. 그것이 멸문지화의 길이 될 줄야.

"캬하하하하. 너거 속곳도 다 내꺼. 너거 빤쓰도 다 내꺼. 너가 가진 건 다 내꺼. 캬하하하하."

기생문이 그만 금지옥엽 방청랑의 딸을 건드리고 만 것이었다.

"저런 여미새를 보았느냐! 당장 저 놈 얼굴의 가죽을 벗기고 삼대를 멸하거라!"

방청랑의 호령이 떨어지게 무섭게 명망 높던 기생문의 집안은 피칠갑이 되었다. 기생문의 낯짝은 뒤집어지고 그때부터 눈알이 돌았다. 떼룩떼룩. 도는 눈알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명문가의 독손에서 지방 호족의 똥을 푸는 머슴의 처지로 전락한 그는 한을 품었다. 그리고 오로지 술과 여자를 탐하는 것으로 한을 풀었다. 쿰쩍쿰쩍. 더러운 똥손으로 양주를 손에 쥐고도 술을 탐했다. 그는 더이상 천녀를 닮은 미소년이 아니었다. 훈장들이 혀를 내두르던 인재도 아니었다. 똥을 푸고 여색과 술에 미친 망나니에 불과했다. 대륭의 사람들은 그를 천방지축 기생문이라 불렀다.



*

"꿈쩍꿈쩍. 술. 술을 줘. 술을 줘!"

기생문이 외쳤다.

"아아아아..."

기생문의 아구에서 풍기는 똥내에 장내에 모인 사람들이 탄식을 흘렸다.

기생문은 사람들의 의식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쿰척쿰척 술. 술 사줘. 술. 양주 좋아. 여자 좋아!"

기생문이 외쳤다.

"... 저... 저런... 망나니가 승진대회에 나오다니... 이건 대륭의 망신입니다!"

나주임이 말했다.

"수뇌부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저 똥망나니는 승진이 걸리지 않으면 사무실에서 한 발자욱도 나오질 않아. 집에도 안가고 사무실에서 양주나 따라 먹으니 이렇게라도 놈을 끌어낼 수 밖에. 졸지에 장수대리가 똥을 푸게 생겼군."

주과장이 말을 받았다.

"술. 쿰척쿰척. 술. 술 줘! 여자! 여자 좋아! 남자! 남자 내 노예! 너거 집도 다 내꺼. 너거 월급도 다 내꺼! 너거 가진 거 다 내꺼! 캬하하하하!"

"회식. 회식 좋아! 공짜. 공짜 술 좋아! 승진 다 내꺼! 일. 일은 싫어! 내 일 니가 해! 내 일 다 니가 해! 니 승진도 다 내 꺼. 니 월급도 다 내 꺼. 캬하하하하."


"윽. 숨을 조심해. 지독한 싸움이 될꺼야."

주과장이 나주임의 코를 가렸다.


썩은 내가.

연무장의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숨을 참았다.






https://youtu.be/e7FdtFbhzJk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막장인 것 같네요 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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