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자 높이의 통창으로 해가 작렬하고 있었다. 해가 돌아 앉은 회장을 비추고 있었다. 회장이 천천히 돌아 앉았다. 맙소사.
나주임이었다.
*
태초에 무림은 하나였다. 검결 오온과 초야의 왕 패천, 검의 극 현제양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러하였다. 무림이 갈린 것은 검이 뜻을 잃은 까닭이었다. 뜻을 잃은 자리에 사람들은 의와 협을 가져와 자신의 이익을 섬겼다. 정파는 정의로운 마음을, 사파는 남을 돕는 마음을 내세웠다. 의와 협은 본디 하나이지 선과 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에 정과 사는 의와 협마저 잃었다. 그들이 사사로움을 의협보다 우선시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무림은 순결을.
잃었다.
*
"오셨습니까 대리님."
나주임이 말했다.
사무실 옆자리에서 몰래 도시락 까먹던 그 표정 그대로였다.
"오르시지요."
나주임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반응을 잊은 채 멍하니 나주임을 보았다. 금빛 햇살이 나주임의 머리카락 사이로 비쳤다.
"오르시지요."
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잘못 본 것인가? 분명 나주임인데. 도시락 까먹다 김가루 묻히고 안 먹은 척 잡아떼던 그 얼굴 그대로인데.
"야 내려와. 미쳤어? 너 걸리면 클나."
내가 나주임에게 작게 말했다.
"이놈."
남자들이 나를 막았다.
결투장에서 봤던 쩌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인들이었다. 이두와 삼두의 두께가 내 얼굴 크기를 압도했다. 나는 바로 깨갱하였다.
_ 빨리 와. 잘못했다 해.
나는 나주임에게 손짓하며 작게 말했다. 미친 나주임은 용좌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디졌네...
나는 내 눈을 가린 무인들의 두터운 갑빠 너머로 나주임을 향해 미친 듯이 손 끝을 까닥거렸다. 나주임이 움직이면 무릎 꿇고 빌 작정이었다.
"물러나세요."
예.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하고 물러나려는 순간 물러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두터운 갑빠의 사나이들이었다. 벙찐 표정으로 나는 나주임을 보았다. 나주임이 웃고 있었다. 매우. 흡족해하는. 마치. 몰래. 책상 아래로. 딸기 우유를. 빨아 마실 때의. 표정이었다.
어. 진짠가.
아니지. 그럴 리 없지.
아니지. 진짠가.
순간 판단이 멈췄다.
나주임에게 전화 안 땡겨 받는다고 구박하던 시간. 탕비실에 내 우유 왜 훔쳐 마시냐고 핍박하던 시간. 법카로 삼각김밥 사 먹으며 걸리면 둘 다 짤린다며 겁주던 시간. 순간 나주임과의 모든 기억이 파편처럼 반짝거렸다.
"주... 주임님... 설마... 재벌 2세?"
"허허. 아니네. 내가 바로 대륭산업 선대 회장. 나 제 철이네."
용상의 아래로 내려오는 나주임의 선한 미소가.
햇살보다 강하게 나의 망막을 파고들었다.
나는 눈이 부셔 더는 그를 바로 볼 수 없었다.
선대 회장 나제철.
그가 용상의 아래로 내려와.
친히.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